거세된 남성 소프라노 가수 카스트라토(Castrato). 한 카스트라토의 삶과 음악을 다룬 「파리넬리」(Farinelli). 94년 제라르 코르비유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18세기 이탈리아에서 실재했던 인물과 이야기를 바탕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와 감동을 동시에 자아낸다.
카를로 브로스키(Carlo Broschi 1705-1782)가 본명인 파리넬리는 볼로냐의 빈궁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소년시절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오직 가난에 찌든 아버지와 형에 의해 카스트라토로 내몰리고 만다. 당시 탁월한 카스트라토는 오페라 흥행의 보증수표와도 같은 존재여서, 가난에 허덕이던 부모들은 눈앞의 일확천금을 꿈꾸며 아들의 거세를 자행했던 것이다.
변성기(變聲期)가 지나지 않은 소년을 거세할 경우, 후두(喉頭)는 소년기의 것 그대로지만 폐(肺)는 점차 성인의 것으로 발달하게 된다. 거대한 폐활량으로 소년기의 후두를 통해 내뿜는 목소리는 대단히 강력하고 매끄러웠으며, 특히 높은 음역에서 현란한 기교를 자유자재로 과시함으로써 당시 오페라의 주연은 물론, 일약 슈퍼스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흥행사이자 매니저 격인 형 리카르도에 의해 사육(飼育)되다시피 한 파리넬리는 가는 곳마다 성공을 거둔다. 자극적인 목소리는 순식간에 무대를 열광으로 들끓게 했고, 청중들은 흥분에 휩싸여 몸을 떨었다. 그의 명성은 이내 유럽 전역을 휩쓸었고, 그 명성만큼 많은 부(富)를 획득했으며, 1740년 마침내 그는 스페인 필립 5세의 총애를 받아 궁정의 전속가수로 활약하기에 이르렀다.
승승장구하는 그의 행로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사람의 성불구자(性不具者)에 지나지 않았다. 가톨릭교회는 카스트라토의 결혼을 불허했고, 사랑하는 여인에의 청혼(請婚)도 면전에서 거부당했다. 무엇보다 그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충족할 수도, 충족시킬 수도 없는 불행한 존재였다. 그러한 그의 슬픔과 괴로움은 수도원의 청년기사 리날도를 사랑하던 알미레나가 마녀 알미나의 질투로 성벽에 갇혔을 때의 참담한 심경과 다를 바 없었으리라.
파리넬리가 부르는 헨델(G. F. Händel 1685-1759)의 오페라 「리날도」(Rinaldo) 중의 아리아 '날 울게 내버려 두오'(Lascia ch'io pianga). 한 거세가수의 운명, 한숨, 괴로움이 담긴 이 노래는,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더욱 쓰리게 한다.
김창욱, 『나는 이렇게 들었다』(세종출판사, 1996), 282-283쪽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의 복수가 (0) | 2017.03.11 |
---|---|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0) | 2017.03.04 |
강 건너 봄이 오듯 (0) | 2017.02.10 |
내 맘의 강물 (0) | 2017.02.03 |
고향의 노래 (0) | 2017.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