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다시 읽기: 인기 악기와 비인기 악기

浩溪 金昌旭 2017. 5. 28. 14:42


김창욱의 '음악의 날개 위에'

독주 선율이나 매력적인 외형으로 주목

국제신문 2006. 7. 11 (19)



음악평론가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가보면 다양한 악기를 만날 수 있다. 문지르고 불고 때려서 소리를 내는 이들은 제각각 연주방식이 다르지만, 그 궁극적 이상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소리와 형태가 비록 달라도 어느 하나 소중하고 가치롭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 가운데는 매우 인기있는 악기가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는 악기도 있다. 가령 현악기를 보자.

 

바이올린은 폭넓은 강약의 변화, 풍부한 표현력, 짙은 호소력은 물론, 넓은 음역에서 한결같이 유지되는 음질 또한 탁월하다. 화려한 음색과 눈부신 기교, 드라마틱한 열정과 뼈에 사무치는 서정성은 가히 '악기의 여왕'이라 일컫기에 손색이 없다. 그런데 바이올린의 할아버지 격에 해당되는 콘트라베이스는 다르다. 따스한 음색, 풍부한 표정, 중후하고 웅장한 음향에도 불구하고 이를 찬미하는 언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같은 현상은 다른 악기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플루트는 대단히 인기있는 악기다. 이에 비해 음악의 극적 효과를 위해 없어서는 안될 트롬본이나 튜바같은 악기는 인기는커녕 좀처럼 주목 받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다.

 

그러고 보면, 인기 악기와 비인기 악기의 구분은 비단 음색이나 음향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음악의 독주선율을 어떤 악기가 담당하느냐, 혹은 그것이 어느 정도 매력적인 외형을 가졌는가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바이올린의 잘록한 외형은 미인의 여체를 닮았고, 순은빛 찬란한 플루트는 금세라도 하늘을 날아오를 듯한 날렵한 몸매를 가졌다. 배우 이영애가 TV 아파트 광고에서 다름 아닌 플루트를 부는 것도 바로 그러한 까닭일 것이다. 만약 그녀가 거친 호흡으로 튜바를 끌어안고 씨름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인기 악기와 비인기 악기는 그 크기와도 상관된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는 아담한 사이즈의 가방 안에 담겨 연주자가 목적하는 어디든 쉽게 옮겨 다닐 수 있다. 아울러 이들이 담긴 악기 케이스를 들고 가볍게 걸어가는 연주자의 뒷모습조차 더없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투박한 생김새의 콘트라베이스나 튜바같은 악기는 여간해서 옮겨 다니기도 어렵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자신의 악기를 옮기기 위해서 반드시 택시를 잡아야 하며, 요금도 '따블'로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작 악기에게 공간을 점령당한 주인은 비좁은 자리에 겨우 구겨져 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적잖은 비용을 지불하고 트럭을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슬 퍼런 80년대 튜바 연주자는 케이스 속 악기를 불법무기로 오인한 경찰로부터 심문당하기 일쑤였다.

 

더욱이 이들은 연주자로서 그 역량 못잖게 덩치 크고 무거운 악기와의 버거운 씨름에서 이길 수 있는 어깨와 힘을 가져야 한다. 튜바를 불던 한 연주자가 허리 디스크에 걸리는 바람에 부득이 전공을 바꿨던 사실이 그 증좌(證左).

 

나아가 인기 악기와 비인기 악기는 레슨시장에서도 그 차이가 현저하다. 바이올린과 플루트는 초등학교 방과후수업은 물론, 개인레슨에서도 시쳇말로 대단히 잘 나가는 악기다. 반면 콘트라베이스·트롬본·튜바는 배우려고 하는 학생이 매우 드물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악기를 전공하느냐에 따라 연주자들의 수입도 엄청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취미건 전공이건 특정한 인기 악기 쪽으로 사람들이 쏠리는 현상은 바로 이같은 현실적인 이유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콘트라베이스나 튜바와 같은 이른바 비인기 악기 연주자가 사라진다면, 그래서 오직 바이올린이나 플루트만으로 연주하는 음악이라면 그 얼마나 무미건조하며, 그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고독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여, 그리고 튜바 연주자여. 아니, 모든 비인기 악기 연주자들이여! 그대들이 없다면 이 세상 어떤 음악의 즐거움도 있을 수 없나니, 부디 힘을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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