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음악의 날개 위에' ⑪
수용시설 청소년에게 음악은 소통이자 희망
『국제신문』 2006. 10. 30 (19)
음악평론가
음악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갖게 한다. 그것은 그들의 잠재된 음악성을 계발시킴은 물론, 풍부한 정서와 창조성을 길러줌으로써 마침내 조화로운 인격체를 형성케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느 학교와는 달리, 이른바 특수학교에서의 음악교사는 이들 교과목표의 성취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삶과 비전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에 오히려 무게중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
40대 중반의 구영립 씨는 올해로 15년째 특수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며 교원자격증을 딴 그는 졸업 후 곧바로 법무부가 주관하는 특별교원임용시험에 응시, 합격했다. 그가 교사로서 첫 발을 내디딘 곳은 법무부 소속의 비행청소년 전문교육기관인 오륜정보산업학교(옛 부산소년원)였다. 여기에는 일반 학교에서 교우관계, 사회 부적응 따위의 문제로 법원소년부에서 보호처분을 받은 12세 이상 20세 미만의 청소년이 수용된다.
그는 여기서 음악교육을 통해 이들의 정서 함양에 주력하는 한편, 컴퓨터교육·전산응용건축제도·자동차정비·전기용접·선반·금형 등 직업능력개발훈련을 측후에서 도와준다. 최대 1년 6개월 내에 이들이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자격증을 취득해서, 퇴원 후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사실 기관에 수용된 청소년들의 가정은 대부분 온전하지 못했다. 가정불화, 부모의 이혼, 가난과 궁핍 등이 부모원망, 무기력, 자괴감으로 증폭되어 점차 스스로를 엇나가게 만든 것이다. 그 가운데는 굶주림에 시달리다 먹을 것을 절도하다 붙잡혀 온 경우도 더러 있었다.
이모 군도 그 중 하나였다. 그의 아버지는 횟집에 고기를 나르는 차량을 몰았다. 어머니와 불화 끝에 이혼한 아버지 밑에서 어렵사리 자라던 그는 설상가상 아버지마저 잃고 말았다. 한밤중 아버지가 도로에서 처참한 교통사고를 당해 끝내 숨지고 말았던 것이다. 한 순간 가정을 잃은 그는 세상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외톨박이 신세가 되었다.
역사나 지하철에서 웅크려 자는 일은 그나마 할 만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먹지 못하는 것은 정녕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마침내 그는 절도행각을 벌이기로 마음 먹었다. 취객의 주머니를 뒤지기도 하고, 아줌마의 핸드백을 훔쳐 달아나기도 했다.
그에게 수용시설은 차라리 안전했고, 아늑했다. 더 이상 먹고 자는 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기서 구영립 교사와 처음 만났다. 교사의 조력을 받으며 그는 누구보다도 음악활동(합주)에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트럼펫을 불었는데, 그가 속한 악대는 2002년 월드컵 홍보단 발대식 축하 퍼레이드에 참가하는가 하면, 금정문화회관 개관식에서도 축하음악을 연주해 적잖은 성가를 올렸다. 나아가 악대는 17개교가 참여한 전국소년원학교 관악경연대회에 출전해서 당당히 최우수상을 따내기도 했다. 그는 삶의 보람과 기쁨이 어떤 것인지를 이때 처음으로 알았다.
1년 간의 수용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가는 그에게 교사는 밥도 먹이고, 대입원서를 사 주며 성공을 바랐다. 이후 그는 서울로 진출, 모 가수의 백댄스와 안무를 맡았다. 연예계 데뷔를 위한 과정이었다. 교사는 명절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를 여쭙는 그를 떠올릴라치면, 매양 흐리기만 했던 지난날의 껍질을 깨고 나온 한 인간의 원초적 순수성을 느낀다.
그러나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통해 조화로운 인격체를 구현한다는 음악논리도 이제 빛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논리가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공동체를 위한 정서교육이 이곳에서도 차츰 뒷전으로 밀리는 까닭이다. 영화 '홀랜드 오피스'에서처럼 한 푼의 예산을 아끼기 위해 음악·연극 등 정서교육이 축소·폐지된다면, 그래서 마침내 홀랜드 같은 유능한 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난다면, 누가 어린 그들에게 삶의 비의(秘意)를 가르쳐 보여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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