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음악의 날개 위에'(17)
충분한 교감에도 불구 엉뚱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국제신문』 2006. 8. 21 (19)
음악평론가
실내악(室內樂, chamber music)은 말 그대로 크지 않은 공간에서 연주할 수 있는 소규모의 음악을 뜻한다. 그것은 독주악기의 개성적 표현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각 악기 상호간의 긴밀한 협력과 일체된 호흡을 요구한다. 따라서 그것은 무대에서 연주자들끼리의 공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오랜 시간 마음을 맞춰 온 멤버일 경우 더할 나위 없는 연주력을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실내악은 청중들로 하여금 실제연주를 바로 눈앞에서 보고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현을 누르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손가락과 그 떨림, 플루트 연주자의 미세한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연주자의 호흡과 긴장상태, 연주에 몰입하는 표정까지도 청중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러나 연주자들끼리의 충분한 교감에도 불구하고, 간혹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없지 않다.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어느 목관3중주단이 작년 5월 한 결혼식장에서 연주할 축하음악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연습곡은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가벼운 분위기의 여흥음악)였다. 리더인 이상창(플루트)이 강영훈(클라리넷)과 여대현(바순)에게 각각 파트보를 나누어 주었고, 연습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러 차례 연습을 되풀이했으나, 왠지 음악의 충만감이랄지 만족감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들 의아한 생각이 들어 또 다시 반복하기를 수 차례.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악기나 연주자의 문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그들은 찬찬히 자신들의 악보를 살폈다. 모두 2/4박자에 조성도 한결같이 바장조로 되어 있었다.
한참이나 악보를 들여다 본 그들은 겨우 해답을 구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똑같은 편성, 똑같은 박자, 똑같은 조성을 가진 파트보였으나, 이들은 제각각 작품번호가 달랐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디베르티멘토의 파트보를 놓고 각자 연습에 열중했던 것이었다. 연습 때 벌어진 일이었기에 그나마 다행스러웠다고나 할까.
한편 연주 연습과 실전 사이에는 엄연한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십 수년 전 가람아트홀에서의 뮤즈앙상블 정기연주회 때였다. 박찬엽(플루트)·박종관(오보에)·홍성택(클라리넷)·정인호(호른)·김동조(바순) 등으로 구성된 목관5중주단이 무대에 섰다. 이들은 연주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자리를 잡았고, 이내 연주가 시작되었다. 연주곡은 그다지 길거나 어렵지 않은 소품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연주가 중단되었다. 왜냐하면 도돌이표(악곡 중에 동일한 진행이 있을 경우, 그 부분을 되풀이해서 연주하라는 표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연주자만이 이를 지키지 않고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연주자 전원은 청중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었고, 이들은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데 정작 실수한 연주자는 연습 중 어느 누구보다 도돌이표에 신경을 썼던 이였다. 도돌이표에 연필로 몇 번이고 동그라미 표시도 하고, 이를 여럿에게 꼭 지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던 까닭이다. 이 경우는 지나친 염려로 말미암아 오히려 실수한 사례라 하겠다.
이러한 실수는 비단 오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1974년 창단된 부산목관5중주단은 김영희(플루트)·김수영(오보에)·홍융신(클라리넷)·박영흠(호른)·김태윤(바순) 등이 멤버로 활동했다. 새부산예식장에서 열린 연주회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진문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바이올린 선율이 뚝 멎었다. 마땅히 나와야 할 바이올린이 멈추자 곧 5중주의 음악도 단절되었다. 모두들 적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바이올린 연주자를 쳐다 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 마침내 백구두의 김진문이 검은 안경테를 내렸다 올렸다 하며 태연스레 말했다.
"악보 거꾸로 놓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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