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음악의 날개 위에'(16)
쓰레기통서 찾은 악보뭉치에 눈물이 왈칵
『국제신문』 2006. 7. 31 (19)
음악평론가
양우석 씨는 일찍이 '오부리' 무대를 주름 잡았고, 지금도 잡고 있는 사람이다. 이때 '오부리'란 노래와 노래 사이에 나오는 연주곡을 뜻하는 '오블리가토'(obbligato)에서 비롯된 말이지만, 흔히 밤무대 손님이 노래를 신청하면 밴드가 즉석에서 맡아 하는 반주라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10년 전 쯤의 일이리라. 여고생 트로트 가수 출신으로, 특히 「천방지축」이라는 사투리 가요로 인기를 끌었던 문희옥이 경주 현대호텔에서 디너콘서트를 가졌다. 반주는 가까운 부산의 6인조 그룹 '양우석 악단'에 낙착되었다.
문희옥의 간드러진 노랫가락에 연신 흡족해 하며, 악단은 한낮의 리허설을 모두 끝냈다. 이제 본 공연시간을 느긋이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7시가 되려면 아직 두어 시간이나 남았다. 단원들은 일찌감치 저녁을 먹었다. 담배도 피고 커피도 마시며 잡담도 했다. 그리고 내기 '훌라'도 쳤다.
놀이는 금새 무르익었고, 시간은 어느새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일말의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모두들 무대로 향했고, 각자 포지션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였다.
"어, 내 악보 어디 갔지?" 베이스 기타가 소리쳤다.
"내 악보도 없는데…"
그러고 보니, 연주자들의 보면대에는 하나같이 악보가 놓여져 있지 않았다.
"장난 치지 말고 빨리 내 놔!" 누군가의 장난으로 여긴 단장이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조금 불안해진 단장은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빨리 안 내 놓을 거야?" 그들은 여전히 무덤덤했다.
이제 본 공연이 채 20분도 남지 않았다. 단장의 불안감은 서서히 증폭되고 있었다.
"아까 단장님이 챙겼잖아요?" 키보드의 목소리였다.
단장은 숨막힐 듯한 불안감을 겨우 억누르며 문제의 악보를 떠올렸다.
그랬다. 그는 평소 제 악보도 제대로 간수 못하던 베이스 기타가 염려되어 아예 악보를 모두 걷어 서류봉투에 넣었다.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급한 통화를 위해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갔고, 악보뭉치를 거기에 둔 사실을 새까맣게 잊은 채 곧바로 저녁을 먹으러 갔던 것이다.
단장은 뒤를 돌아다 볼 새도 없이 공중전화 부스 쪽으로 내달았다. 하지만 웬걸, 그곳에는 악보뭉치는커녕 종이조각 하나 없었다. 시간은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그의 불안감은 이제 공포감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팔을 걷어붙인 그는 쓰레기 통이란 통은 모조리, 그리고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땀으로 뒤덤벅된 전신에 연방 땀방울이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악보뭉치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앞이 캄캄했다.
바로 그때, 문득 섬광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청소 아줌마를 만나야 한다!'
어렵사리 아줌마를 찾은 그는 악보뭉치의 대강을 설명했다.
"아줌마, 제발 나 좀 살려 주소. 혹시 이런 거 못 봤능교?"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호흡은 가빴다. 그는 마치 심판대에 오른 죄인처럼 아줌마의 처분을 숨 죽이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콩나물 그림 말잉교?"
그렇게 말한 아줌마가 드디어 자신의 쓰레기 통에서 꺼내 든 것은, 아, 그것은 바로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맸던 악보뭉치가 아니던가! 왈칵 눈물이 쏟아졌고, 목이 메어왔다.
아줌마의 손아귀에서 덥썩 빼앗은 악보뭉치를 그는 행여나 놓칠세라 가슴 속에 꼬옥 품었다. 그리고는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냉큼 돌아서서 무대로 내달렸다. 그때 어깨너머로 아줌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국도 못 끓이는 콩나물 대가리가 뭐 그리 대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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