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다시 읽기: 어떤 야외음악회

浩溪 金昌旭 2017. 8. 3. 10:37


김창욱의 '음악의 날개 위에'

여름엔 날벌레들에 뜯기고 겨울엔 손이 얼기도

국제신문 2006. 9. 4 (19)



음악평론가


실내 연주공간은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로부터 자유롭다. 두꺼운 벽과 높은 천장이 이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야외음악 공간은 삶과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사람들은 음악을 듣기도 하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음식을 먹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지속해서 음악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요컨대 야외음악은 실내악의 예술적 자율성을 포기하는 대신 대중적 일상성을 획득한다.

 

이러한 야외무대는 산이나 바다, 혹은 계곡에서 열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생명의 신성함과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산상음악회가 제격이다. 그리고 거기서는 주로 이동성이 자유로운 소규모 연주가 이루어진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7, 부산 하단 에덴공원 언덕 위에서 '솔바람 음악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부산플루트앙상블이 초청되었다. 지역 플루트 음악계의 선도자라 할 만한 이하룡을 필두로, 박찬엽 이상창 장극태 정옥경 등의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어둠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자, 한낮의 무더위가 한 풀 꺾였다. 땡볕에 따갑도록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차츰 잦아들고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무대 둘레에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차례로 켜졌다. 청중들은 자리를 잡고 앉거나, 혹은 뒤편에 서서 구경거리를 기다렸다.

 

마침내 연주자들이 긴 소매의 무대복을 입고 등장했다. 연주곡은 비제의 「아를르 여인」을 비롯한 낯익은 음악들이었다. 교교한 달빛 아래 흐르는 선율이 사뭇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데 무대 위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불청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빛에 매혹된 하루살이 나방 날파리 모기 등 각양각색의 벌레들이 떼 지어 날아드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무대는 그들의 놀이터로 점령당했고, 낯선 이방인들을 거침없이 공략했다. 얼굴 손 다리 엉덩이 할 것 없이 닥치는대로 물고 뜯고 할퀴었다. 특히 유일한 여성주자(정옥경)에게 달겨드는 놈들의 공격은 집요하고도 맹렬했다. 샴푸내음 향긋한 목덜미가 그 주요한 타깃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매미떼가 갑자기 무대 쪽으로 돌격해 왔다.

 

매미떼는 육중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더할 나위없이 날쌘 용맹성을 자랑했다. 그런 다음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앉아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다. 매미도 여자를 좋아하는 것일까. 어쨌든 그녀는 프로연주자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연주를 갈무리했다.

 

야외음악회의 어려움은 비단 한여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겨울에도 그 나름의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역시 10여 년 전 새해 11일 밤이었다. 필하모니 클래식음악동우회(회장 조영석) 회원들을 포함한 연주자 화가 시인 등 문화계 인사들이 오대산에서 열린 '설상(雪上)' 음악회에 참여했다. 겨울 한 철 내내 눈을 볼 수 있는 그곳에서 눈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는 KBS방송국 취재진도 동행했다.

 

눈 쌓인 산자락에는 모닥불이 활활 타올랐고, 그 주변에는 음악을 듣기 위한 청중들이 빙 둘러 자리를 잡았다. 이윽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플루트(이상창)와 기타(고충진)의 듀오였다. 연주곡은 아일랜드 민요 「봄을 기다리며」였고, 그것은 한겨울 속에 봄을 느끼게 하는 매우 서정적인 음악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주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도 된 소리는 나지 않았다. 영하 15도의 강추위 탓에 손가락이 얼어버렸던 까닭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 플루트 끝에 맺힌 고드름으로 말미암아 연주자는 끝내 중심 선율의 음정마저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봄이 오면, 집 나간 음정도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