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예써, 아이 캔 부기

浩溪 金昌旭 2017. 9. 8. 07:37


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2>

『인저리타임』 2017. 9. 8


바카라

 

이봐요, 당신의 눈이 머뭇거림으로 가득하군요

당신이 찾는 걸 알고 있는지 의구심마저 드는군요

이봐요, 난 명성을 유지하길 원하죠

난 감동 그 자체죠.

한 번 더 내게 시도해 봐요, 좀 더 간청해 봐요.

 

예써, 아이 캔 부기(Yes Sir, I can Boogie)는 스페인의 여성 듀엣 바카라(Baccara)의 힛트곡이다. 'Baccara'는 독일어로 '장미'라는 뜻인데, 멤버는 마리아 메디올로와 메이테 마테우스. 섹시한 눈빛, 끈적거리는 목소리, 그들은 1977년부터 1981년 해산될 때까지 뭇 남정네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특히 도입부의 붉그레한 신음소리가 사뭇 자극적이다.

 

묘하게도 그날,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때 벌어졌던 그 아득한 광경이 새삼 떠오르곤 한다.

 

몇 해 전 삼복더위, 대저(大渚) 본가에 다녀오던 어느 백주대낮이었다. 나는 시골길 노상에서 흘레 붙는 한 쌍의 개를 만났다. 고양이만한 흰둥이 밑에 송아지만한 누렁이가 깔린 채 농염(濃艶)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코 끝까지 진주(進駐)한 자동차 앞에서도 그들은 막무가내, 오직 자기네 사랑놀음에 탐닉하고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그들은 이따금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거기에는 흑백(黑白)이나 좌우(左右), 상하(上下)의 어떠한 경계나 갈등도 없었다. 오직 혼연일체(渾然一體)의 완전합일(完全合一) 만이 자리한 적멸(寂滅)의 시간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몰던 차를 멈추었다. 그리고 경적(警笛)을 꾹꾹 눌러댔다. 한참이나 뜸 들이던 놈들은 그제서야 부스스한 몰골로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고양이만한 흰둥이는 혓바닥으로 연신 자기 입술을 낼름낼름 훔쳐댔다. 눈꼽이 낀 채 쩝쩝 입맛을 다시는 녀석의 모습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그들의 열락(悅樂)을 한순간에 빼앗은 나는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낯선 국외자(局外者)의 침탈로 자신들의 원초적 본능을 거세당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놈들도 내게 최소한의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했다. 그 많은 풀섶을 두고, 하필이면 왜 내가 건너 가려는 그 길 한 가운데인가? 후끈후끈 30도를 오르내리는 땡볕 아래서, 왜 하필 말초신경(末梢神經)이 유독 예민한 내 앞에서인가?



예써, 아이 캔 부기

https://youtu.be/NKvDh6mcI0o


김창욱 음악평론가·부산시의회 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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