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욱의 '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1>
『인저리타임』 2017. 9. 1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할 만한 나이가 아니예요
나는 아직 당신과 둘이서만 외출할 수 있는 나이가 못 되어요
만약 당신이 나를 그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그날 나의 모든 사랑을 당신께 드리겠어요.
이탈리아 가수 질리올라 칭케티(Gigliola Cinquetti 1947- )가 노래한 「나이도 어린데」(Non Ho L’Età)는 마리오 판제리(Mario Panzeri)가 쓴 가사에 니콜라 살레르노(Nicola Salerno)가 선율을 얹었다. 16살 짜리 칭케티의 산레모 가요제 데뷔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사내가 어렵사리 소녀에게 말을 건넨다. 둘이서 바깥 바람이나 쇠러 가자고. 수줍은 소녀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숨이 막힐 만큼 가슴이 떨려 왔다. 하지만, 소녀는 차마 사내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 나이가 어렸으니까.
순수의 시대, 내가 고등학생 때인 80년대만 해도 그랬다. 여학생을 만나거나, 이성과 터놓고 얘기 나눈다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다. 기껏, 여고 학예제에 가서 그림이나 시화(詩畫)를 구경하는 정도였다고 할까?
그 무렵 나는 미션스쿨에 다녔다. 그러나 아침마다 들리는 '하나님 아버지', '아멘', '주여' 같은 말들이 싫어, 아예 토요일마다 산사에서 열리는 불교학생회에 입회해 버렸다. 거기에는 시내 여러 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는데, 내 또래 여고 2학년생도 많았다.
그 가운데 수려한 미모가 빛나는 여학생이 없지 않았다. 특히 B여상의 이모(李某) 양과 H여고 황모(黃某) 양은 가히 군계이학(群鷄二鶴)으로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힐끔힐끔 눈길 주지 않는 남학생이 없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산사에서 3천배, 즉 절을 3천 번이나 하는 행사가 열렸다. 시간은 대략 저녁 8시부터 이튿날이 희뿌윰히 밝아올 때까지였다. 다들 절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가 아파오고, 숨이 턱턱 막혀 왔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방울조차 닦을 새도 없었다.
실로 고통의 바다였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남학생들은 누구 하나 도중에 포기하지 않았다. 나도 그럴 수 없었다. 우리 뒤쪽에는 여학생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었고, 그 중에 군계이학이 나의 뒷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한 마디 말도 붙이지 못했지만,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렸으니까.
나이도 어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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