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장미키스

浩溪 金昌旭 2019. 1. 20. 15:04


최정란 시인께서 지난해 연말에 출판된 시집을 보내왔다. 『장미키스』(서울: 시산맥, 2018)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초야에 묻힌 나로서, 문화계 말석을 우두커니 지키고 섰는 나로서 어찌 감읍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있으리오.


시집의 표지는 온통 짙붉은 색깔이다. 속지마저도 짙붉다. 젝스키스도 아닌 장미키스! 장미의 키스? 장미와 키스? 장미에게 키스?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유혹과 탐닉의 어지럼증! 마광수가 '장미여관'에 들고,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 가시에 찔려 죽었다지?


시집에는 총 4부 58편의 신작이 수록되어 있다. 예상대로 '장미키스'는 '장미와의 키스'다. "장미와 입을 맞추었지 / 가시를 끌어당겨 장미향기를 입술 안으로 / 깊이 빨아들였지 / 장미는 벌린 내 입을 더 크게 벌리고 / 내 심장을 꺼내 가졌지 / 그날부터 나는 심장이 없지 … <중략> … 짧은 시간을 함께 한 꽃은 빨리 지지 / 짧은 시간에 모든 숨결을 다 주기 때문이지"(장미키스)


『장미키스』에는 유독 '꽃', '피', '심장' 등이 즐겨 등장한다. 대칭적인 이미지로는 '창', '칼', '검' 따위다. 곧  '꽃', '피', '심장'을 '창', '칼', '검'이 겨누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심장'은 그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이미지다. "심장을 관통하는 창들", "제 심장 제가 겨누는 어리석음", "누구의 심장에도 기꺼이 순장 당하지 않는 삶" 등이 그렇게 보이게 한다.   


'심장'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쉼없는 펌프질이 멎으면 죽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 『장미키스』는 여전히 타오르는 불길처럼 뜨겁고 숨막히며 열정적이다. 꽃이 지고, 피가 응결(凝結)되고, 마침내 심장마저 찔릴 줄 알면서도. 2019. 1. 20 들풀처럼 


스캔 바이 들풀처럼. 시집의 겉표지.


스캔 바이 들풀처럼. 속표지에 씌어진 시인의 친필. 내 이름이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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