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회 간섭 때문인가…소신·실력 겸비 문화행정가의 명퇴
을숙도문화회관 송필석 관장, 정년퇴임 1년 앞두고 돌연 사표
- 송 관장 “개인적 이유·휴식 위해”
- 공무원들 사표 원인 구의회 거론
- “기획 지적 등 평소 무례한 언사”
- 구의원 “예산 활용도 따졌을 뿐”
기초지자체 문예회관에서 의미 있는 기획과 프로그램을 꾸준히 마련하며 부산 공연 문화 향상에 기여해온 을숙도문화회관 송필석 관장이 정년퇴직을 1년 앞두고 갑작스레 사직을 결정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 사하구는 을숙도문화회관 송필석 관장이 오는 31일 자로 명예퇴직한다고 27일 밝혔다. 송 관장은 지난 1일 사하구에 명예퇴직 신청서를 제출했다. 을숙도문화회관은 사하구가 운영하는 공연 및 전시시설이다. 송 관장은 사하구 소속 공무원 신분으로 내년 12월 정년퇴직 예정이었다.
송 관장은 개인적 이유와 휴식을 이유로 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갑작스러운 사퇴에 음악계와 구청 안팎에서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송 관장이 지난 5월부터 부산 최초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라는 보기 드문 기획을 실행하면서 의욕을 보였고, 그간 예술 전문 공무원으로서 을숙도문화회관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왔다는 평가를 예술계에서 받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사하구 내에서는 사하구의회의 무리한 지적과 간섭이 원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국공무원노조 사하구지부 홈페이지에는 ‘문화예술행정 실력자가 구의회의 지나친 갑질에 무너졌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사하구의 한 공무원은 “구의회 일부 의원이 수년 전부터 을숙도문화회관의 기획 방향에 대해 꾸준히 문제 삼았고, 그 과정에서 무례한 언행이 종종 있었다. 순수 예술로 구성한 프로그램 방향에 대해 늘 비판적이었고, 대중적인 공연 기획을 요구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이후 꾸려진 사하구 인수위 역시 이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발언 또한 있었던 걸로 안다”고 전했다.
실제 사하구의회는 을숙도문화회관의 기획 방향에 대해 수차례 지적해 왔다. 지난 7대 의회 총무위원회 소속 A 의원은 위원회를 통해 ‘구의 예산으로 돌아가는데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클래식만 열심히 하고 있는가’ ‘말러 전곡을 왜 을숙도문화회관에서 해야 하는가, 관장 개인 취향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이 과정에서 무례한 태도와 언사가 있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재선으로 현재 8대 의회 소속인 A 의원은 “구의원으로서, 구 예산이 들어가는 시설인 만큼 33만 주민이 모두 즐길 수 있는 기획을 해야 한다고 비판한 것이다”라며 “태도와 언행에 대한 지적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5월에도 ‘갑질 논란’이 불거졌는데, 말투와 억양이 듣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 거라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예술문화기관에 대한 이런 방식의 접근은 해당 기관의 정체성과 근본적 방향성을 훼손하는 지나친 간섭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1987년 9급 부산시 공무원으로 시작한 송 관장은 대학 시절 전공한 음악학을 바탕으로 2008년부터 을숙도문화회관에서 공연기획계장으로 근무했고 2015년 관장으로 승진했다. 예술에 관한 전문성·행정·경영 능력을 갖춰 지리적·재정적으로 열악한 을숙도문화회관의 공연문화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을숙도문화회관은 부산 최초 오페라축제, 대학가곡제, 사라장 백건우 등이 협연한 명품콘서트 등 알찬 기획을 내놓았으며 지난 5월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하며 문화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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