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의 '봄날은 간다'(1954)
백설희가 불러 널리 알려짐
장사익이 부르는 '봄날은 간다'
최백호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
주현미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
한영애가 부르는 '봄날은 간다'
말로와 전제덕(하모니카)의 '봄날은 간다'
이동원의 '봄날은 간다'는 아래의 블로그 참조.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PAtW&articleno=61#ajax_history_home
산과 들에 꽃들이 지천이다.
누구에게나 봄날은 있다.
그러나 머잖아 꽃은 지고,
바야흐로 봄날도 갈 것이다.
가뭇없이 떠나버린 지난 겨울 紙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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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부산일보' 2011년 4월 30일자에 난
소설가 박명호 님의 에세이입니다.
[토요에세이]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전쟁 직후 대구에서 발표한 이 노래는 손로원 작시 박시춘 작곡에 백설희가 불렀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한다. 시인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난다 긴다 하는 가수들도 저마다 조금씩 다른 자기 버전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가운데 '한영애'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원곡의 백설희는 낭랑하면서도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가는 봄날의 아쉬움을 드러냈다면, 한영애는 한층 깊게 꺾이는 한숨과 가는 것에 대한 자조 섞인 탄식으로 봄날의 정한을 노래했다. 그것은 '가는 봄날'이라는 순간성과 맞물리면서 허무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날리며
지난해 봄날도 그렇게 갔고
올해 봄날도 아쉽게, 그렇게 간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자꾸만 모네의 그림 '양산을 쓴 여인'이 오버랩된다.
화사한 옷을 입은 여인이 양산을 쓰고 화사한 봄 언덕에 있다. 바람이 불어 구름이고 머리카락이고 치맛자락이고 날리고 있다. 여인의 옷자락과 언덕에 핀 꽃이나 풀의 경계가 없는 듯하다. 아니 아름다운 여인과 아쉬운 봄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경계마저 허물어진다. 손에 잡힐 듯한 아름다움이지만 막상 움켜쥐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순간이 포착된 봄날의 환상이다. 그래서 일장춘몽(一場春夢)일까. 인생의 정점에서 인생의 허무를 보듯, 아름다움의 정점에서 비극을 떠올리며, 오는 봄날에 가는 봄을 생각하게 한다.
-옛날, 요정과 결혼한 젊은이가 있었다. 요정의 조건은 화가 나더라도 절대 자신을 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매우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말이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화가 나서 고삐를 집어던졌다. 그만 옆에 있던 아내가 맞고 말았다. 요정이던 아내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애초 '봄'은 시간 개념이다. '보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봄'이라는 외마디 음절로 말을 만든 우리 민족의 지혜가 놀랍다. 그것은 이미 봄이 가지는 순간성, 곧 아쉬움을 옛날에도 뼈저리게 감지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는 봄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소월 시처럼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아도' 잡을 수 없다. '누구에게도 그런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 시인 정일근처럼 탄식하지 않는다 해도, 기껏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술잔에 꽃잎 따위를 띄워놓고 캬- 하는 아쉬움이나 달래는 낭만뿐이다. 그래서 봄은 캬-, 캬- 한 번씩 할 때마다 오 리, 십 리씩 멀어져 가는 것이다. 봄은 발병도 안 나니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탄식도 할 수 없다.
작년 봄날도 분명히 그렇게 갔고 올해 봄날도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날려가는 것처럼 봄날은 간다. 봄날은 오는가 싶었을 때 벌써 저만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봄은 땅에 닿지 않는 풍선과 같다. 봄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월도, 인생도, 청춘도, 꿈도 풍선처럼 떠서 간다. 풍선은 스스로 무게가 없으므로 땅에 닿지 못하고 떠 있다. 떠 있는 것은 잡을 수 없고, 잡으려 할수록 더 빨리 간다. 그래서 아쉽다.
내 첫사랑도 참으로 아쉬웠다. 지금은 꿈인지 현실인지조차도 헛갈리는 아득한 옛날이야기지만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은 순간의 현상뿐이다.
그러나 첫사랑에 푹 빠져 있을 때 나는 몸이 늘 한 뼘 정도는 붕- 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도 엉덩이가 의자에 붙지 않고 한 뼘 정도 떠 있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잠 잘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부자리에서 한 뼘 붕- 떠 아무리 엉덩이나 등짝을 방바닥에 붙이려 해도 되지 않아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길을 걸을 때도 허공을 딛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달콤하고 황홀했지만 그 지경에 이르니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다행히 그러한 경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 경지가 한 달만 더 지속되었더라도 나는 정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독한 첫사랑도 붕- 떠서 이미 저 대기권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부질없음이다.
작년 이맘땐가 지난 60년 동안 '봄날은 간다 간다' 하던 백설희가 죽었다. 그런데 국민가수가 죽었는데도 언론의 반응은 너무 조용했다. 그보다 몇 달 전 죽은 국민 작곡가 박춘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그의 노래가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 역사상 그만큼 우리 정서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죽음에 대해서는 그저 신문에 박스 기사 하나가 끝이었다. 그것은 비슷한 시기에 유명을 달리한 한 인기 스님의 죽음과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가히 법정 신드롬이랄 만큼 언론의 관심은 대단했다. 급기야는 시중 서점에서 그의 책이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 출판을 말라는 고인의 유언도 슬그머니 거둬들인 출판사 상술에 의해 그와 관련된 책은 베스트셀러 상위 부분을 압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노래보다 책을 좋아하고, 정서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선호해서일까.
우리의 의식이나 정서도 풍선처럼 붕- 떠 있다. 그것 또한 금방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봄은 이율배반이다. '온다'와 '간다'가 같은 의미이면서 다르기도 하고, 또 서로 바뀌기도 하는 영원한 역설인 것이다.
전쟁 직후 대구에서 발표한 이 노래는 손로원 작시 박시춘 작곡에 백설희가 불렀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한다. 시인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난다 긴다 하는 가수들도 저마다 조금씩 다른 자기 버전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가운데 '한영애'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원곡의 백설희는 낭랑하면서도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가는 봄날의 아쉬움을 드러냈다면, 한영애는 한층 깊게 꺾이는 한숨과 가는 것에 대한 자조 섞인 탄식으로 봄날의 정한을 노래했다. 그것은 '가는 봄날'이라는 순간성과 맞물리면서 허무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날리며
지난해 봄날도 그렇게 갔고
올해 봄날도 아쉽게, 그렇게 간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자꾸만 모네의 그림 '양산을 쓴 여인'이 오버랩된다.
화사한 옷을 입은 여인이 양산을 쓰고 화사한 봄 언덕에 있다. 바람이 불어 구름이고 머리카락이고 치맛자락이고 날리고 있다. 여인의 옷자락과 언덕에 핀 꽃이나 풀의 경계가 없는 듯하다. 아니 아름다운 여인과 아쉬운 봄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경계마저 허물어진다. 손에 잡힐 듯한 아름다움이지만 막상 움켜쥐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순간이 포착된 봄날의 환상이다. 그래서 일장춘몽(一場春夢)일까. 인생의 정점에서 인생의 허무를 보듯, 아름다움의 정점에서 비극을 떠올리며, 오는 봄날에 가는 봄을 생각하게 한다.
-옛날, 요정과 결혼한 젊은이가 있었다. 요정의 조건은 화가 나더라도 절대 자신을 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매우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말이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화가 나서 고삐를 집어던졌다. 그만 옆에 있던 아내가 맞고 말았다. 요정이던 아내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애초 '봄'은 시간 개념이다. '보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봄'이라는 외마디 음절로 말을 만든 우리 민족의 지혜가 놀랍다. 그것은 이미 봄이 가지는 순간성, 곧 아쉬움을 옛날에도 뼈저리게 감지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는 봄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소월 시처럼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아도' 잡을 수 없다. '누구에게도 그런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 시인 정일근처럼 탄식하지 않는다 해도, 기껏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술잔에 꽃잎 따위를 띄워놓고 캬- 하는 아쉬움이나 달래는 낭만뿐이다. 그래서 봄은 캬-, 캬- 한 번씩 할 때마다 오 리, 십 리씩 멀어져 가는 것이다. 봄은 발병도 안 나니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탄식도 할 수 없다.
작년 봄날도 분명히 그렇게 갔고 올해 봄날도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날려가는 것처럼 봄날은 간다. 봄날은 오는가 싶었을 때 벌써 저만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봄은 땅에 닿지 않는 풍선과 같다. 봄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월도, 인생도, 청춘도, 꿈도 풍선처럼 떠서 간다. 풍선은 스스로 무게가 없으므로 땅에 닿지 못하고 떠 있다. 떠 있는 것은 잡을 수 없고, 잡으려 할수록 더 빨리 간다. 그래서 아쉽다.
내 첫사랑도 참으로 아쉬웠다. 지금은 꿈인지 현실인지조차도 헛갈리는 아득한 옛날이야기지만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은 순간의 현상뿐이다.
그러나 첫사랑에 푹 빠져 있을 때 나는 몸이 늘 한 뼘 정도는 붕- 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도 엉덩이가 의자에 붙지 않고 한 뼘 정도 떠 있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잠 잘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부자리에서 한 뼘 붕- 떠 아무리 엉덩이나 등짝을 방바닥에 붙이려 해도 되지 않아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길을 걸을 때도 허공을 딛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달콤하고 황홀했지만 그 지경에 이르니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다행히 그러한 경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 경지가 한 달만 더 지속되었더라도 나는 정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독한 첫사랑도 붕- 떠서 이미 저 대기권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부질없음이다.
작년 이맘땐가 지난 60년 동안 '봄날은 간다 간다' 하던 백설희가 죽었다. 그런데 국민가수가 죽었는데도 언론의 반응은 너무 조용했다. 그보다 몇 달 전 죽은 국민 작곡가 박춘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그의 노래가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 역사상 그만큼 우리 정서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죽음에 대해서는 그저 신문에 박스 기사 하나가 끝이었다. 그것은 비슷한 시기에 유명을 달리한 한 인기 스님의 죽음과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가히 법정 신드롬이랄 만큼 언론의 관심은 대단했다. 급기야는 시중 서점에서 그의 책이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 출판을 말라는 고인의 유언도 슬그머니 거둬들인 출판사 상술에 의해 그와 관련된 책은 베스트셀러 상위 부분을 압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노래보다 책을 좋아하고, 정서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선호해서일까.
우리의 의식이나 정서도 풍선처럼 붕- 떠 있다. 그것 또한 금방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봄은 이율배반이다. '온다'와 '간다'가 같은 의미이면서 다르기도 하고, 또 서로 바뀌기도 하는 영원한 역설인 것이다.
-봄날은 간다.
전쟁 직후 대구에서 발표한 이 노래는 손로원 작시 박시춘 작곡에 백설희가 불렀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한다. 시인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난다 긴다 하는 가수들도 저마다 조금씩 다른 자기 버전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가운데 '한영애'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원곡의 백설희는 낭랑하면서도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가는 봄날의 아쉬움을 드러냈다면, 한영애는 한층 깊게 꺾이는 한숨과 가는 것에 대한 자조 섞인 탄식으로 봄날의 정한을 노래했다. 그것은 '가는 봄날'이라는 순간성과 맞물리면서 허무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날리며
지난해 봄날도 그렇게 갔고
올해 봄날도 아쉽게, 그렇게 간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자꾸만 모네의 그림 '양산을 쓴 여인'이 오버랩된다.
화사한 옷을 입은 여인이 양산을 쓰고 화사한 봄 언덕에 있다. 바람이 불어 구름이고 머리카락이고 치맛자락이고 날리고 있다. 여인의 옷자락과 언덕에 핀 꽃이나 풀의 경계가 없는 듯하다. 아니 아름다운 여인과 아쉬운 봄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경계마저 허물어진다. 손에 잡힐 듯한 아름다움이지만 막상 움켜쥐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순간이 포착된 봄날의 환상이다. 그래서 일장춘몽(一場春夢)일까. 인생의 정점에서 인생의 허무를 보듯, 아름다움의 정점에서 비극을 떠올리며, 오는 봄날에 가는 봄을 생각하게 한다.
-옛날, 요정과 결혼한 젊은이가 있었다. 요정의 조건은 화가 나더라도 절대 자신을 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매우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말이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화가 나서 고삐를 집어던졌다. 그만 옆에 있던 아내가 맞고 말았다. 요정이던 아내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애초 '봄'은 시간 개념이다. '보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봄'이라는 외마디 음절로 말을 만든 우리 민족의 지혜가 놀랍다. 그것은 이미 봄이 가지는 순간성, 곧 아쉬움을 옛날에도 뼈저리게 감지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는 봄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소월 시처럼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아도' 잡을 수 없다. '누구에게도 그런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 시인 정일근처럼 탄식하지 않는다 해도, 기껏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술잔에 꽃잎 따위를 띄워놓고 캬- 하는 아쉬움이나 달래는 낭만뿐이다. 그래서 봄은 캬-, 캬- 한 번씩 할 때마다 오 리, 십 리씩 멀어져 가는 것이다. 봄은 발병도 안 나니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탄식도 할 수 없다.
작년 봄날도 분명히 그렇게 갔고 올해 봄날도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날려가는 것처럼 봄날은 간다. 봄날은 오는가 싶었을 때 벌써 저만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봄은 땅에 닿지 않는 풍선과 같다. 봄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월도, 인생도, 청춘도, 꿈도 풍선처럼 떠서 간다. 풍선은 스스로 무게가 없으므로 땅에 닿지 못하고 떠 있다. 떠 있는 것은 잡을 수 없고, 잡으려 할수록 더 빨리 간다. 그래서 아쉽다.
내 첫사랑도 참으로 아쉬웠다. 지금은 꿈인지 현실인지조차도 헛갈리는 아득한 옛날이야기지만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은 순간의 현상뿐이다.
그러나 첫사랑에 푹 빠져 있을 때 나는 몸이 늘 한 뼘 정도는 붕- 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도 엉덩이가 의자에 붙지 않고 한 뼘 정도 떠 있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잠 잘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부자리에서 한 뼘 붕- 떠 아무리 엉덩이나 등짝을 방바닥에 붙이려 해도 되지 않아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길을 걸을 때도 허공을 딛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달콤하고 황홀했지만 그 지경에 이르니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다행히 그러한 경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 경지가 한 달만 더 지속되었더라도 나는 정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독한 첫사랑도 붕- 떠서 이미 저 대기권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부질없음이다.
작년 이맘땐가 지난 60년 동안 '봄날은 간다 간다' 하던 백설희가 죽었다. 그런데 국민가수가 죽었는데도 언론의 반응은 너무 조용했다. 그보다 몇 달 전 죽은 국민 작곡가 박춘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그의 노래가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 역사상 그만큼 우리 정서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죽음에 대해서는 그저 신문에 박스 기사 하나가 끝이었다. 그것은 비슷한 시기에 유명을 달리한 한 인기 스님의 죽음과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가히 법정 신드롬이랄 만큼 언론의 관심은 대단했다. 급기야는 시중 서점에서 그의 책이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 출판을 말라는 고인의 유언도 슬그머니 거둬들인 출판사 상술에 의해 그와 관련된 책은 베스트셀러 상위 부분을 압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노래보다 책을 좋아하고, 정서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선호해서일까.
우리의 의식이나 정서도 풍선처럼 붕- 떠 있다. 그것 또한 금방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봄은 이율배반이다. '온다'와 '간다'가 같은 의미이면서 다르기도 하고, 또 서로 바뀌기도 하는 영원한 역설인 것이다.
전쟁 직후 대구에서 발표한 이 노래는 손로원 작시 박시춘 작곡에 백설희가 불렀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한다. 시인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난다 긴다 하는 가수들도 저마다 조금씩 다른 자기 버전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가운데 '한영애'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 원곡의 백설희는 낭랑하면서도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가는 봄날의 아쉬움을 드러냈다면, 한영애는 한층 깊게 꺾이는 한숨과 가는 것에 대한 자조 섞인 탄식으로 봄날의 정한을 노래했다. 그것은 '가는 봄날'이라는 순간성과 맞물리면서 허무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날리며
지난해 봄날도 그렇게 갔고
올해 봄날도 아쉽게, 그렇게 간다
이 노래를 들으면 자꾸만 모네의 그림 '양산을 쓴 여인'이 오버랩된다.
화사한 옷을 입은 여인이 양산을 쓰고 화사한 봄 언덕에 있다. 바람이 불어 구름이고 머리카락이고 치맛자락이고 날리고 있다. 여인의 옷자락과 언덕에 핀 꽃이나 풀의 경계가 없는 듯하다. 아니 아름다운 여인과 아쉬운 봄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경계마저 허물어진다. 손에 잡힐 듯한 아름다움이지만 막상 움켜쥐면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다. 순간이 포착된 봄날의 환상이다. 그래서 일장춘몽(一場春夢)일까. 인생의 정점에서 인생의 허무를 보듯, 아름다움의 정점에서 비극을 떠올리며, 오는 봄날에 가는 봄을 생각하게 한다.
-옛날, 요정과 결혼한 젊은이가 있었다. 요정의 조건은 화가 나더라도 절대 자신을 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매우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키우던 말이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화가 나서 고삐를 집어던졌다. 그만 옆에 있던 아내가 맞고 말았다. 요정이던 아내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애초 '봄'은 시간 개념이다. '보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측이 되지만, '봄'이라는 외마디 음절로 말을 만든 우리 민족의 지혜가 놀랍다. 그것은 이미 봄이 가지는 순간성, 곧 아쉬움을 옛날에도 뼈저리게 감지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는 봄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소월 시처럼 '실버들을 천만사 늘여놓아도' 잡을 수 없다. '누구에게도 그런 알뜰한 맹세를 한 적은 없지만… 시들시들 내 생의 봄날은 간다'. 시인 정일근처럼 탄식하지 않는다 해도, 기껏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술잔에 꽃잎 따위를 띄워놓고 캬- 하는 아쉬움이나 달래는 낭만뿐이다. 그래서 봄은 캬-, 캬- 한 번씩 할 때마다 오 리, 십 리씩 멀어져 가는 것이다. 봄은 발병도 안 나니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고 탄식도 할 수 없다.
작년 봄날도 분명히 그렇게 갔고 올해 봄날도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날려가는 것처럼 봄날은 간다. 봄날은 오는가 싶었을 때 벌써 저만큼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봄은 땅에 닿지 않는 풍선과 같다. 봄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월도, 인생도, 청춘도, 꿈도 풍선처럼 떠서 간다. 풍선은 스스로 무게가 없으므로 땅에 닿지 못하고 떠 있다. 떠 있는 것은 잡을 수 없고, 잡으려 할수록 더 빨리 간다. 그래서 아쉽다.
내 첫사랑도 참으로 아쉬웠다. 지금은 꿈인지 현실인지조차도 헛갈리는 아득한 옛날이야기지만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은 순간의 현상뿐이다.
그러나 첫사랑에 푹 빠져 있을 때 나는 몸이 늘 한 뼘 정도는 붕- 떠 있었다. 의자에 앉아서도 엉덩이가 의자에 붙지 않고 한 뼘 정도 떠 있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잠 잘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부자리에서 한 뼘 붕- 떠 아무리 엉덩이나 등짝을 방바닥에 붙이려 해도 되지 않아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길을 걸을 때도 허공을 딛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엔 달콤하고 황홀했지만 그 지경에 이르니 괴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 다행히 그러한 경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 경지가 한 달만 더 지속되었더라도 나는 정말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독한 첫사랑도 붕- 떠서 이미 저 대기권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부질없음이다.
작년 이맘땐가 지난 60년 동안 '봄날은 간다 간다' 하던 백설희가 죽었다. 그런데 국민가수가 죽었는데도 언론의 반응은 너무 조용했다. 그보다 몇 달 전 죽은 국민 작곡가 박춘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그의 노래가 대중의 심금을 울렸다. 우리 역사상 그만큼 우리 정서에 영향을 끼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죽음에 대해서는 그저 신문에 박스 기사 하나가 끝이었다. 그것은 비슷한 시기에 유명을 달리한 한 인기 스님의 죽음과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가히 법정 신드롬이랄 만큼 언론의 관심은 대단했다. 급기야는 시중 서점에서 그의 책이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 출판을 말라는 고인의 유언도 슬그머니 거둬들인 출판사 상술에 의해 그와 관련된 책은 베스트셀러 상위 부분을 압도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노래보다 책을 좋아하고, 정서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을 선호해서일까.
우리의 의식이나 정서도 풍선처럼 붕- 떠 있다. 그것 또한 금방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봄은 이율배반이다. '온다'와 '간다'가 같은 의미이면서 다르기도 하고, 또 서로 바뀌기도 하는 영원한 역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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