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위기의 대학 예술계, 누구 책임인가

浩溪 金昌旭 2011. 6. 14. 16:25

 

등록금 문제로 나라가 온통 뒤숭숭하다. '미친' 등록금을 외치던 대학생들이 마침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밝히고, 정치권은 '반값' 등록금 논란으로 연일 티격태격이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정작 이를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현직 대통령이 요리조리 눈치나 살피면서 오히려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학, 대학인가 기업인가

그러던 와중에 대학들은 학령인구 감소와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학과 간 통폐합, 정원 감축 등의 구조조정은 물론, 심지어 폐과(廢科)도 서슴지 않고 있다. 가까이는 동서대 동아대 신라대 울산대, 멀리는 경인여대 계명대 배제대 청주대 충북대 등이 그렇다. 특히 폐과의 주 타깃은 사립대학의 인문, 예술관련 학과에 집중되어 있다. 시쳇말로 '돈 안되는' 학과이기 때문이다.

최근 동아대는 무용학과를 폐과했다. 1983년에 개설되었으니, 28년 만의 일이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구성원과의 어떠한 논의과정도 없이 대학이 일방적으로 폐과결정을 내린 것은 우선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한 일이다. 또한 그것은 여타 사학도 작정만 하면 '손쉽게' 폐과할 수 있다는 전례를 제시했고, 나아가 지역 예술계의 위축 가능성도 한껏 열어 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간 춤만 춰 왔던 기존의 재학생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

지난 10년 새 사립대학 등록금은 거의 2배나 치솟았다. 게다가 동아대의 경우 2010년 회계연도 기준 운영수익 중 학생 등록금 의존비율이 무려 73. 2%나 차지한다. 이 기간 정부 국고보조금과 기부금도 늘었고, 대학 금고에는 수조 원의 누적 적립금이 쌓였다. 그런데도 사학은 운영수입의 4%에 불과한 쥐꼬리만 한 전입금으로 대학을 사유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이 사회적 공공성을 망각하고, 학생들을 끌어 모아 오직 '돈 되는' 장사에만 열을 올린다면, 그것은 기업이지 대학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대학이란 자본의 논리를 넘어서기는커녕 오히려 자본의 논리를 앞서 실천하는 전위대라 할 만하다.

그렇다고 이것이 비단 대학 당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학에 소속된, 이른바 대학 예술계가 일차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과연 대학 예술계는 사회와의 소통에 얼마만큼 관심을 기울여 왔던가. 사회를 향해 열려 있기보다는 언제나 강단 안에서 소용되는 예술을 지향하지는 않았는가. 이른바 순수예술 보호라는 명분 아래 줄곧 '온실 속의 화초'로 키워져 온 것은 아닌가.

다시 동아대 무용학과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이 대학 무용학과는 학과 개설 당시 정원이 40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원자 수 감소로 말미암아 어느 순간 정원이 30명으로 줄었고, 2008년 26명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21명으로 축소·조정되었다. 학과 개설 이후 정원이 절반이나 줄어든 셈이다.

벌써 오래 전 급격히 줄어드는 정원에도 학과 관계자는 도대체 위기의식조차 느끼지 못했단 말인가. 배에 물이 차면 퍼내든지, 물 새는 곳을 때우든지 사전에 무슨 자구책이라도 세웠어야 했다. 물이 새고, 차고 넘쳐서 급기야 배가 침몰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요란을 떤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둔감한 대학 예술계, 폐과 자초

굳이 자본주의니, 신자유주의니 하는 거창한 말일랑은 말자. 예술도 어디까지나 사회의 울타리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시대에도 아랑곳 않고 무용학과는 여전히 전통무용, 발레, 현대무용 전공과 같이 이른바 순수예술 인력만을 마치 붕어빵 찍어내듯 생산해 내지 않았던가. 무용학과는 스포츠댄스나 벨리댄스, 비보이 같이 오늘날 사회가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춤을 애써 경계했고, 무용이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임을 '잘' 전달하는 유통 과정에 무관심하지 않았는가. 그 대신에 몇몇 소수의 전문 춤꾼을 위해 학과 전체가 움직이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비합리적 운영구조에 눈감지 않았던가. 대학 예술계의 위기, 과연 누구의 책임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