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민경찬, '청소년을 위한 한국음악사: 양악편'(서울: 두리미디어, 2006)
김 창 욱
음악사가 민경찬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가 교양서 한 권을 냈다. '청소년을 위한 한국음악사: 양악편'라는 제목의 책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지금까지 한국 근대음악사 연구에 매진해 온 중견 음악학자이다. 그의 연구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광범위하다. 그 내용 또한 근대 음악교과서와 음악교육사 연구는 물론, 일본 근대음악사, 중국 조선족 음악, 근대 음악용어, 북한음악 연구 등과 같이 한층 다양하다.
한국 근․현대음악사에 대한 그의 오랜 연구결과를 집대성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학술적 의미(학문성)를 갖는다. 더불어 이 책은 그러한 학술적 의미를 쉽고 재미(대중성) 있게 풀어 썼다는 점에서 마땅히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저작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크게 모두 10부로 짜여져 있다. 제1부 ‘한국 음악의 출발’에서는 근대 서양음악의 수용과 자생적 음악의 탄생, 양악대 창설 및 음악교육의 시작, 제2부 ‘일제강점기의 음악: 새로운 전통의 창조’에서는 근대 음악문화와 음악가들, 제3부 ‘일제강점기의 음악: 창작음악의 시작’에서는 창가․동요․가곡들, 제4부 ‘일제강점기의 음악: 음악의 현장’에서는 청중․공개연주회․관현악․음악평론, 레코드와 방송활동, 제5부 ‘일제강점기의 음악: 저항의 음악과 굴욕의 음악’에서는 일제에 저항한 노래와 굴절의 음악사를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제6부 ‘해방공간 및 6․25 전쟁기의 음악’에서는 해방가요의 등장, 좌․우익 음악단체와 음악가들, 제7부 ‘분단시대의 음악사’에서는 분단상황과 음악분야별 활동, 제8부 ‘우리 음악의 현황’에서는 80년대 이후 한국 서양음악계의 변화, 제9부 ‘대중가요사’에서는 한국 대중가요의 형성과 시대별 변천과정, 마지막 제10부 ‘또 다른 우리의 음악사: 북한의 음악사’에서는 북한음악의 현황과 특징, 남․북 음악교류사 등을 각각 일별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이 책에서 일제강점기의 음악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무려 네 부분을 이 시기에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늘날 음악과 음악사회에 여전히 잔존하는 모순과 갈등이 바로 이 시기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한 까닭일 것이다.
406쪽에 이르는 이 책의 분량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치고는 다소 부담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학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고려한 탓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과 형식에서 보이는 탁월성은 남다르다.
우선 그의 음악사 서술은 객관적이다. “학자들 사이에 견해를 달리하거나 우리 사회에서 아직 합의를 보지 못한 내용, 혹은 결론이 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필자의 판단을 유보”한다는 집필원칙에 의거했다는 점이 그러하다. 예컨대 일제강점기의 현제명․이면상․홍난파․박시춘․손목인․김기수(친일음악 작곡자), 이종태․계정식․홍난파․김관․김재훈(친일적 음악비평자), 채규엽․백년설․남인수(친일음악 가창자), 조명암․이광수․김억(친일음악 작사자) 등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공과(功過)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전체를 보지 않고 30년대 중반 이전의 행적인 ‘공(功)’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를 하느냐, 그 이후의 행적인 ‘과(過)’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를 하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공’으로 ‘과’를 덮으려 해서는 안되지만, ‘과’가 있다고 해서 ‘공’까지 전체를 부정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좌․우익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증폭되었던 광복 이후 프롤레타리아 해방가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도 객관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임화 작사, 김순남 작곡의 「인민항쟁가」를 비롯한 「인민 유격대의 노래」․「농민가」․「남조선 형제여 잊지 말아라」․「조선 빨치산의 노래」 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의 혁명투쟁에 나선 사람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뜨거운 혁명의 노래였으나, 이를 막거나 반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끔찍한 피의 노래였다. … 조국의 해방과 광복의 환희를 노래한 해방가요는 점차 갈등과 대립의 노래로 바뀌어 버렸다. 우리 민족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해방을 선동하는 투쟁적인 해방가요로 변모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역사의 햇빛을 받지 못한 한국 음악사의 주역들’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한다. 가령 1920년대 프롤레타리아 동요와 관련한 언급이 그러하다.
“음악을 통하여 식민지의 부당성과 모순을 고발하고 식민 치하에서의 우리 민족이 처해 있는 현실을 자각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비록 독자적인 음악양식으로 발전하는데 실패하였지만, 음악의 사회적 역할을 인식시키는데는 나름대로 기여하였습니다.”
또한 저작은 내용에 걸맞는 만화․사진․악보․개념설명․에피소드 등을 적재적소에 풍부하게 삽입시킴으로써 애초 “우리가 일상적으로 즐기는 음악이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형성 및 변천이 되었는지 알아보고, 또 그 음악을 통하여 느껴보고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다같이 생각해 보자”는 저술목적에 보다 가깝게 다가서고자 했다. 그것은 수용자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 한 저자의 미덕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출간은 높이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의 고비마다 주요하게 기능했던 각 지역의 음악상황이 비교적 가볍게 다루어졌다는 점에서 자못 아쉬움이 크다. 예컨대 6․25 한국전쟁기와 부산, 80년대와 5․18 광주 등은 특정한 지역적 범주를 뛰어넘어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물줄기를 바꾼 분수령이었고, 이와 관련한 선행 음악연구도 없지 않은 까닭이다. 아울러, 겨우 찾아낸 다음 몇몇 오자(誤字) 및 오류(誤謬)는 재판에서 수정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쪽 수 |
오(誤) |
정(正) |
141 |
이끈음 |
이끔음 |
198 |
트럼본 |
트롬본 |
220 |
김일성 체재 |
김일성 체제 |
310 |
음악관의 차이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한 사람은 남쪽을 택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북쪽을 택했다. |
수정(여기서 한 사람, 즉 홍난파는 남쪽을 택할 수 없었다. 이미 그는 해방 전인 1941년에 작고했기 때문이다.) |
'음악과 민족' 제33호(부산: 민족음악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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