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6시30분 사하구 하단동 도시철도 하단역.
퇴근 시간을 맞아 고단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플루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플루트가 그려내는 소리는 ‘고향의 봄’.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익숙한 멜로디에 청아한 플루트의 소리가 더해지면서 앞만 보고 무심히 지나가던 사람들은 일순 걸음을 멈추고 뜻밖의 아름다운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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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도시철도 하단역에서 플루트 연주를 하고 있는 하단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 |
사하구의 지역문화공동체인 사하문화사랑방(공동대표 김영준·최우석)이 주최한 지하철 공연 '작은 음악회' 의 풍경이다.
이 공연은 매월 둘째와 넷째 수요일 저녁마다 지역의 문화예술 관련 단체나 개인 등이 참여해 열리고 있는데 이날은 하단지역아동센터(원장 박선숙) 아이들이 연주에 나선 것이다.
이날 연주한 사람은 윤유림(17·동주여고 1년), 정희정(13·하단초 6년), 홍수지 (12·하단초 5년), 마정은(12·하단초 5년), 정다정(11·낙동초 4년) 양 등 모두 5명.
이들은 이날 ‘고향의 봄’을 비롯해 ‘등대지기’, ‘하늘나라 동화’, ‘부르신 곳에서’, ‘그 사랑 얼마나’, ‘사라방드’, ‘넬라 판타지아’, ‘리듬 오브 더 레인’ 등 모두 8곡을 연주했는데 한 곡 한곡 끝날 때마다 50여명의 관객들로부터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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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가 끝날 때마다 박수로 격려하고 있는 관객들. |
공연 장소나 공연 규모나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무대였지만 이날 연주회가 보다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은 이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열심히 플루트를 배워 그간 익힌 솜씨를 선보이는 자리이기 때문.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악기를 구입하고 전문강사를 모셔 매주 한 차례 꾸준히 해왔다. 어렵게 얻은 배움의 기회였던 만큼 아이들 모두 열성적으로 배웠고, 실력도 많이 늘어 지난해 연말 하단교회에서 첫 공연을 갖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두 번째 무대인 이날 연주회는 그간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아이들이 직접 준비해 이루어진 것이다.
“퇴근길에 플루트 소리가 들려서 나도 모르게 공연을 보게 됐다.” 는 김순덕 씨(45·사하구 하단동)는 “음악에 대해 잘 몰라 잘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연주를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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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난 뒤 연주에 나선 어린이들과 하단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문민아씨(23·연제구)는 “서면에서 거리공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프로연주자들인 것 같았다. 아이들이 거리공연을 하는 모습은 오늘 처음 보는데 신기하고, 연주하는 아이들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플루트를 배울 수 있게 된 것이 꿈만 같다는 정희정 양은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모여서 연습하고 집에서 틈틈이 연습했는데 호흡이 잘 맞아 기쁘다.” 고 말했다.
홍수지 양도 “공연을 준비할 때부터 재미있었다. 지난 번 공연보다 실력이 향상된 것이 너무 기분 좋다.” 고 말했다.
박선숙 원장은 “플루트를 배우고 싶지만 배우기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아이들이 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서 배울 수 있게 됐다. 너무 고마운 일이다. 오늘 여러 모로 도와주신 분들에 대한 보답으로 아이들이 직접 전 과정을 준비했는데 공연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특하다.” 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들의 공연이 끝난 뒤에는 사하구태극권연합회(회장 김필재)의 태극권 시범이 이어졌다.
김필재 회장은 “전 세계 1억 인구가 태극권을 수련하는데 우리나라는 태극권을 모르고 계신 분들이 많아 이를 알리기 위해 무대에 서게 됐다. 오늘 공연으로 태극권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늘었으면 한다.” 고 말했다.
한편 이날 모든 공연이 가능하게 된 것은 사하문화사랑방의 지원 덕분. 최우석 대표, 강대영 총무 등 회원들이 나와 무대준비에서부터 행사진행과 마무리까지 모두 도맡았다.
사하문화사랑방은 현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준 OK 오병원 원장과 최우석 치과원장, 김대영 총무 등이 의기투합해 지난해 2월 만들었다.
특히 수년 동안 부산지역의 문화관련 기관·단체를 후원하면서 문화예술공동체와 시민들과의 소통에 노력해 온 최 원장 등이 사하구의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을 연결하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3년간을 준비한 끝에 탄생시켰다.
처음 10여명에 불과했던 회원이 1년6개월여 만에 230명을 넘어섰으며, 활발한 활동으로 지역의 문화예술 현장 한 가운데 서있을 정도로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날 열린 지하철 공연을 매월 두 차례 주최하는 것을 비롯해 1년에 한 차례 을숙도에서 광장음악회를 열고 있으며, 최근에는 ‘찾아가는 음악회’를 주관하는 등 사하구의 지역 문화예술의 토양을 굳건히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최우석 대표는 “지하철 공연은 오늘 하단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같이 공연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공연을 통해 개인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또 지하철을 이용하는 구민들에게는 문화예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며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소리 혹은 음악을 듣게 해 준다는 건 정말 의미 있는 일” 이라고 말했다.
사하문화사랑방 회원으로, 혹은 지하철 공연 공연자로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estarts) 나 김대영 총무(010-3344-3302)에게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