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라디오 '굿모닝 부산' 인터뷰
어제 아침, 라디오 방송을 타고 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네.
나는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에 대해서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했지.
왜, 오페라하우스 건립인가 하는 점에 의문이 든다. 오페라하우스의 핵심 콘텐츠가 될 '오페라'라는 예술이 대한민국의 정체성, 혹은 부산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부산시민들이 대단히 애호하거나 열광하는 것도 아니다. 한 해 부산에서 열리는 오페라 공연은 겨우 3-4편, 많아야 5-6편 정도다. 게다가 오페라 공연에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음악․연극․춤이 포괄되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에). 불과 0.1% 내외의 극소수 관객을 위해서 3천억짜리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것은 무모한 일이 아니냐?
오페라하우스는 건립비만 하더라도 3,037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물론 그 이상이 투입될 수도 있다. '영화의 전당'(건립비 1,624억원) 보다 건립비가 두 배에 가까운 액수다. 롯데가 총 건립비 가운데 1,000억을 낸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나머지 2,037억원은 시민들의 혈세(血稅)로 메워야 할 판이다. 게다가 이후에 소요될 막대한 운영비는 누가, 어떻게 충당할 텐가!
'영화의 전당'은 한 해 40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수평적으로 따진다면, 오페라하우스는 족히 70-80억원의 적자폭을 예견할 수 있다. 올해 부산시의 빚이 무려 3조에 이른다. 이 역시 시민들이 갚아야 할 몫이다. 더구나 오페라 티켓값은 적게는 몇 만원, 많게는 몇 십만원이다. 불특정 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르라는 말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오페라하우스인가!
작년 부산시는 ‘도시 브랜드 3개년 계획’을 확정하고, 30개의 세부사업 가운데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2순위로 꼽았다. 오페라하우스 건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터다. 그런데 부산시는 정작 그 곳에 무엇을 담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가진 적이 없다. 예컨대 부산시는 오페라하우스 운영을 위한 콘텐츠 개발, 기능에 따른 공간활용,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전문 예술단과 스탭은 물론 행정요원과 같은 운영인력 확보에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오페라에 대한 수요나 경제적 타당성 조사뿐 아니라, 전반적인 시설 조율조차 하지 않은 채 일사천리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41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갈 제2시립미술관 건립도 턴키(turn key, 시행업체가 설계와 시공을 일괄 수주하고 공사를 마치면 발주처에게 열쇠를 되돌려 주는 것)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각한 문제다.
부산시의 시정은 여전히 시민복지.문화복지보다 건설․토목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 부산시의회 의정참여단의 올해 부산시 자체예산 분석결과에도 나타나듯이 시민복지 예산(총 2천 229억원)은 건설․건축 등 토목예산(총 6천 936억원)의 1/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건설․토목도 필요하지만,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직접 관련되는 복지나 문화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뭔가 새로 짓고 만들기 보다 기존의 문화공간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일상생활 가까이의 기존 문화공간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부산은 지금도 이미 많은 공연장을 보유하고 있다. 각 을숙도․해운대․동래․금정․영도 등지의 지역문화회관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평균가동률이 20-40%에 불과하다. 관객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들이 다시 찾고 싶어하는 공연콘텐츠나 프로그램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운영주체가 행정직 공무원으로 포진되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간 전문가들을 적극 영입하고, 공연기획 예산을 대폭 인상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공연장의 핵심주체인 예술가 및 예술단체와 같은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부익부 빈익빈의 계층간 양극화 문제와 함께 중심과 주변이라는 지역간의 심각한 양극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제1의 해양도시였던 부산은 불과 10년 새에 무려 44만 인구가 줄어들었고, 대한민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앞다퉈 부산을 떠나고, 부산은 전국 7대 도시 가운데 고령화 지수(11.3%)가 가장 높은 초고령화 사회로 이미 접어들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부산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국제적 규모의 랜드마크'가 아니다. 오히려 활기 잃은 부산 시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고, 그들의 왜소해진 문화적 자존감과 자긍심을 회복시키는 일이 급선무다.
문화는 반드시 '크고 강한' 것이 아니다. 의외로 작고 섬세한 것이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