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그리고' 2012년 여름호(통권 제5호)
롯데 1000억, 문화후원인가 개발이익 환수인가?
김창욱(음악평론가)
‘롯데’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껌이다. “쥬시 후레쉬, 후레쉬 민트, 스피아 민트…껌이라면 역시 롯데껌”이라는 윤형주의 달콤한 CM송도 떠오르고, 한 통에 50원 하던 이브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소 먹이던 중학시절도 기억난다. 뒤에 알았지만, ‘롯데’(샤를로테)는 그 유명한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이 아니던가. 롯데껌은 티없이 맑은 로테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더욱 짙은 맛과 향을 뿜어냈다.
흔히 적은 액수의 돈을 ‘껌값’이라고 한다. 소액을 홀대해서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롯데는 껌값을 모아 성장한 기업이다. 1967년 4월에 껌을 만들어 팔던 롯데제과는 70년대에 롯데호텔․롯데상사․롯데칠성음료․롯데건설, 80년대에 롯데냉동․한국후지필름․롯데물산․롯데자이언츠․롯데백화점․롯데월드, 90년대에 롯데캐피탈, 2000년대에 롯데카드, 롯데홈쇼핑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시켰다. 식품에서부터 유통․관광․중화학․건설․기계․금융․정보에 이르기까지 롯데가 손 대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롯데의 손은 가히 미다스를 방불케 한다. 79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는 마침내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이 되었고,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의 국내 재계 순위조사에서 삼성․SK․LG에 이어, 자산총액 83조 3천 50억원으로 7위를 차지했다.
이런 재벌그룹이 오래전 부산에 오페라하우스를 짓는데 1천억원을 내놓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지난 2008년 5월 15일 부산시는 롯데그룹과 ‘부산오페라하우스’(가칭, 새롯데 뮤지컬센터) 건립기부 약정식을 체결했다. 약정서는 롯데그룹이 사업비 1천억원을 들여 북항 재개발지역 내 부지 6만여㎡에 연면적 2만 3100㎡ 규모의 오페라하우스를 건립, 부산시에 기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즈음 우리는 롯데가 약속한 1천억원이 과연 부산문화를 위한 순수 후원금인지, 나아가 이 정도 예산으로 세계적 수준의 오페라하우스 건립이 타당한지 등에 대해 면밀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먼저 롯데의 1천억원이 문화후원인가 하는 점이다.
기업의 문화후원 정도는 메세나 참여실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문화예술계 지원을 목적한 한국메세나협의회에 롯데가 어느 정도 참여했는가 하는 점이다. 아쉽게도 한국메세나협의회가 발표한 ‘2009년 문화예술 지원 상위 20대 기업’ 명단에서 롯데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10대 그룹’으로 꼽히는 롯데그룹 계열사가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이 9위, 신세계백화점이 15위를 차지했으나, 백화점 업계에서 시장점유율 1위인 롯데백화점은 보이지 않는다. 부산은행․세정․성원종합건설․옵스 등과는 달리, 부산메세나 참여에 있어서도 매 한가지다.
그렇다면 롯데가 문화가 아닌, 사회공헌에 관심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롯데의 지역공헌 마인드는 거의 없는 편이다.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모금단체인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2010년 기업 기부 현황자료에 따르면, 부산은행과 세정이 한 해 동안 각각 11억 7천만원, 3억 6천만원을 기부했다. 그런데 롯데그룹의 계열사인 롯데주류와 롯데건설은 각각 5천 3백만원과 5천만원,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1천 4백만원을 기부한 정도다. 롯데 자이언츠는 1천 2백만원으로 기부 순위 50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다.
사실 롯데는 부산기업이 아니다. 부산에서 태동한 기업도 아니고, 본사도 부산이 아니다. 그런데도 롯데는 자이언츠, 즉 야구에 대한 부산시민들의 사랑을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 백화점․신용카드를 비롯한 롯데 계열사 전반의 시장 점유율이 여타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10년 부산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소매유통업 소매동태 조사’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의 시장점유율은 65%로 신세계 24.5%, 현대 10.5%를 크게 앞서고 있다. 이는 롯데백화점의 전국 시장점유율 44.1%를 훨씬 넘어서는 수치다. 또한 롯데카드의 부산시장 점유율도 전국 점유율의 2배에 이른다. 롯데카드사가 제시한 2010년 롯데카드의 전국 시장 점유율은 7.5%인데, 부산시장 점유율은 약 15% 정도로 추산된다.
또한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리아의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 역시 타 지역보다 부산에서 급속도로 세를 불리고 있다. 엔제리너스가 인터넷에 공개한 전국 가맹점 현황에 따르면 부산의 가맹점은 인구 1천만 명 서울 110개 점(23개 구)의 절반 수준인 54개 점(12개 구)에 달한다.
그러나 ‘2010년 대형유통기업 지역 기여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롯데마트의 경우 1년 이상 장기성 예금 예치나 월 현금 매출액 예치, 급여통장 활용실적이 전무했다. 롯데호텔은 심지어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분류되어 지방세 감면혜택까지 받았다. 호텔롯데 부산은 부산진구청을 상대로 이미 납부한 지방세를 환급해 달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 지난 2001년 4억 4천 8백여만원의 세금을 돌려받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롯데백화점 광복점 뒷편 107층 짜리 초대형 부산롯데타운 주거허용 특혜논란, 롯데마트 신설과 증설에 따른 전통시장의 고사위기, 백양산 골프장 건설 논란 등 굵직한 논란의 중심에는 언제나 ‘유통 공룡’ 롯데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런 까닭에, 롯데의 1천억원이 순수한 문화후원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를 빌미로 오페라하우스 건립에 턴키(turn key, 시행업체가 설계와 시공을 일괄 수주하고 공사를 마치면 발주처에게 열쇠를 되돌려 주는 것) 방식으로 롯데건설의 참여가 예상된다. 즉 롯데는 부산시에 1천억의 오페라하우스 건립비를 내놓고, 외려 그 이상의 개발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혐의가 없지 않은 것이다.
한편 롯데가 내놓은 1천억원으로 과연 세계적 수준의 오페라하우스 건립이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지난 5월 11일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과 발전방향을 위한 시민공청회’(부산시의회 2층 대회의장)에서는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을 맡았던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가 오페라하우스 개발 규모와 시설 구성안을 제안했다. 제1안은 오페라극장 1천 800석, 중극장 500석, 콘퍼런스홀 300석 규모다. 제2안은 오페라극장 1천 800석, 대극장 1천석, 콘퍼런스홀 300석이다. 제3안은 오페라극장 1천 800석, 콘퍼런스홀 300석이다. 그러나 어떤 안이 결정되든 건립 예상비용은 3천억원을 훌쩍 넘어선다. 롯데 1천억원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지난해 해운대에 들어선 ‘영화의 전당’에는 1천 624억원의 건립비가 들어갔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전용관이자 다목적 공연장으로 만들어진 이곳에는 한 해 40억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물론 적자 폭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겨우 한 해 2-3편의 오페라가 열리는 부산에서, 불과 0.1% 내외의 극소수 관객을 위해서 3천억 짜리 오페라하우스를 짓는 일은 무모하지 않는가. 더구나 여기에 소요될 막대한 운영비는 도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결국 부산시민들이 혈세(血稅)로 메워야 할 판이 아닌가!
작년 부산시는 ‘도시 브랜드 3개년 계획’을 확정하고, 30개의 세부사업 가운데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2순위로 꼽았다. 그런데도 부산시는 정작 오페라하우스에 무엇을 담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가진 적이 없다. 예컨대 부산시는 오페라하우스 운영을 위한 콘텐츠 개발, 기능에 따른 공간활용, 그리고 소프트웨어와 전문 예술단과 스탭은 물론 행정요원과 같은 운영인력 확보에 그다지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오페라에 대한 수요나 경제적 타당성 조사뿐 아니라, 전반적인 시설 조율조차 하지 않은 채 일사천리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
부산시의 문화정책은 늘 이런 식이다. 41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갈 제2시립미술관 건립도 그랬다. 심각한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부산시정이 복지보다 토목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부산시의회 의정참여단의 올해 부산시 자체예산 분석결과에도 나타나듯이 시민복지 예산(총 2천 229억원)은 건설․건축 등 토목예산(총 6천 936억원)의 1/3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시쳇말로 ‘뽀대 난다’는 말이 있다. ‘폼 난다’는 뜻이다. 더 큰 규모, 더 화려한 외양을 자랑하는 오페라하우스 건립은 정말 뽀대 나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 무엇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전후좌우의 성찰도 없이 먼저 ‘짓고 보자’는 것은 막가파식 토건행정이 아닌가.
젊고 유망한 지역 문화예술가들이 부산을 떠나고 있다. 예술가들은 이슬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지역마다 문화회관이 있지만 객석은 여전히 썰렁하다. 볼 만한 공연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여기’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부산의 ‘랜드마크’가 아니다. 오히려 부산을 떠나는 젊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예술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또한 기존 지역문화회관에 민간 전문가를 초빙하고, 기획공연 예산을 대폭 증액시키는 것이 순리다. 그래서 문화의 물결이 부산 사람들의 일상적 삶까지 출렁이게 해야 한다.
문화는 반드시 ‘크고 강한’ 것이 아니다. 의외로 작고 섬세한 것이 문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