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7(22)
현장과 여백: 음악
'크고 강한' 것에 가려진 작고 섬세한 것들
지난 10년간 사하구의 유일한 공공 공연장 역할을 충실히 해 온 을숙도문화회관에서 지난달 30일 중국의 톈진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열렸다. 을숙도문화회관 제공.
흔히 문화권을 구분할 때 경제적 잣대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강남권과 강북권으로 나뉘는 서울이 그렇고, 동부산권과 서부산권으로 갈리는 부산도 그렇다. 특히 해운대에는 대형 문화시설인 벡스코나 영화의전당이 잇따라 들어섰고, 근래 벡스코 제2전시장과 오디토리움도 개관했다. 그것은 이른바 부산의 사회지도층이나 부유층의 절반이 여기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반면, 서부산권의 사하에는 지난 2002년에 문을 연 을숙도문화회관이 외톨이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접근성이 문제지만, 이 지역의 유일한 공공 공연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포지션을 갖고 있다.
올해로 개관 10돌을 맞은 을숙도문화회관이 지난달 30일 오후 4시 대공연장에서 기념무대를 열었다.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을 겸한 이번 무대에는 중국의 톈진(天津)심포니오케스트라도 불러왔다. 톈진은 베이징과 상하이 다음 가는 중국 제3의 도시가 아니던가. 이날은 호국보훈의 달 6월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즉, 을숙도문화회관 개관, 한·중 수교, 호국보훈의 달을 한꺼번에 기념해야 할 복합적인 무대였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레퍼토리 구성이었다. 중국 관현악곡 '나의 열정, 나의 조국(我的中國心)'을 필두로 한 음악회는 안익태의 '한국환상곡'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여기에 '뱃노래'와 '신아리랑'과 같은 민요풍의 창작음악, 한·중 양국 지휘자와 성악가의 출연도 유효적절하게 배치되었다. 호산나교회합창단과 반올림합창단 등 지역합창단의 출연은 을숙도문화회관의 개관 기념 의미를 드높이는 기제로 작용했다.
음악회 내용도 고무적이었다. 양리(楊力)의 지휘로 첫 문을 연 '나의 열정 나의 조국'은 부드러움과 강렬함, 현악과 관악, 선율과 리듬의 콘트라스트가 두드러졌고, 테너 이은민은 '뱃노래'에서 특유의 미성을 자랑했다. 그리고 소프라노 후앙시안춘(黃顯順)은 '신아리랑'에서 기교적 서정성을 뽐냈고, 테너 리후아다인(李華典)은 '그라나다'에서 순도(純度) 높은 연주력을 선보였다. 하이라이트 '한국환상곡'은 카리스마 넘치는 백진현의 지휘로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웅장하고 장대한 음향이 무대와 객석을 가득 채웠다.
다만, 이날 음악회는 몇 가지 아쉬움을 남겼다. 대중성을 목적한 독창이나 중창과는 달리, 모차르트의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본 음악회의 정체성이나 콘셉트와는 적잖이 거리가 있어 보였다. 700여 석에 불과한 공연장에서 성악가들이 마이크를 사용함으로써 수용자들이 그들의 가공된 음향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도 아쉬웠다.
더욱이 팸플릿의 작품해설은 매우 안일하게 쓰였다. 예컨대 '뱃노래'(조두남 작시)를 "고향에 대한 향수를 그리며 부르는 전통민요"라거나, '신아리랑'(양명문 작시)을 "아리랑이라는 후렴이 들어 있는 구전민요이며… 가사만 다를 뿐 요즈음 우리가 부르는 일반적인 아리랑과 같다"고 쓴 점이 그렇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근대 양악 1세대 작곡가인 조두남과 김동진이 쓴 민요풍의 창작가곡이다.
문화란 반드시 '크고 강한' 것이 아니다. 뜻밖에 작고 섬세한 것이 문화다.
김창욱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