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강서구청 주관 심포지엄
'강서 신장로마을의 가치 재조명과 창의적 발상'
발제 : 강동진 교수(경성대)
토론 : 좌장 김정하 교수(한국해양대)
김수화 교수(동서대)
우신구 교수(부산대)
한승욱 박사(부산발전연구원)
김창욱 박사(음악평론가)
오늘, 내 고향 강서구청 앞마당을 밟았네.
사하구청과 부산시청엔 더러 들락거렸지만,
정작 내 고향 강서구청은 처음이었네.
감개가 무량했다네.
발제문 '강서 신장로마을의 가치 재조명과 창의적 발상'에 덧붙여
김 창 욱(음악평론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창조도시’가 붐을 이루었다. 독일의 루르지방, 프랑스의 소피아 앙티 폴리스, 미국의 뉴욕과 오스틴, 아일랜드의 더블린 등 해외 도시들이 이른바 창조도시로 소개되었고, 가까운 일본의 요코하마와 가나자와가 동아시아의 창조도시로 급부상했다. 더불어 창조도시 분야의 ‘세계적 석학’, 혹은 ‘세계 권위자’로 토론토대학의 리차드 플로리다, 오사카대학의 사사키 마사유키 교수 등이 잇따라 국내에 초청되기도 했다.
이에 발맞춰, 서울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지자체들이 곧장 ‘창조도시’라는 슬로건을 앞다퉈 내걸었다. 대전․광주․창원 등이 그랬고, 완주는 ‘미래창조도시’라는 문패를 달기도 했다. 창조도시학회가 생겼고, 창조도시포럼이 열렸으며, ‘창조도시’라는 제하의 월간지도 발행되었다.
부산시도 마찬가지였다. 창조도시본부를 만들고, 관련 전문가를 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제가 사는 사하구도 그랬다. 청장 직속으로 창조도시위원회를 만들고, 창조도시 워킹그룹과 창조도시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창조도시 역량강화 워크샵을 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창조도시’라는 말이 이렇게 차고 넘치는데도 정작 그 실체가 무엇인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는데 있다. 더구나 ‘창조도시’라면 의당 지역민들의 자주적․자발적․자생적인 창의성(창조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인데, 관(官)이 앞서 주도했다는 점에서 획일적이고, 하나같이 ‘창조’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모방적이다. 왜 필요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도 없이 대전․김해․양산․목포․진주에 이어 다대포․부산역 등지에 유행처럼 세워진 음악분수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와 궤를 같이해서, 오늘날 부산에서는 ‘도시’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시도되고 있다. ‘도시(마을) 만들기’, ‘도시재생’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시개발이나 도시재생과 같은 현행 관(官) 주도의 사업들이 해당 지역의 고유한 특색을 바탕으로 차별화되고 특성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작정 따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마을재생의 의미와 가치는 물론, 그것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 하는 생각까지도 더불어 담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 발제를 맡은 강동진 교수님의 견해는 여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필요한 구상이라고 여겨진다.
발제에서 강교수님은 모두 4가지 사항을 언급하고 있다. 1. 신장로의 역사성, 2. 마을재생에 대한 주민들의 공감대 형성, 3. 음악가 금수현과 마을발전의 접목, 4. 지역자원에 근거한 발전전략 제시 등이 그것이다. 특히 발제문에서는 신장로마을의 역사성, 이 고장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금수현), 그리고 지역자원(토마토․낙동강)과 연계한 마을 발전 등이 중요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논의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역사와 문화(근․현대를 가로지르는 음악가 금수현의 재발견)를 통한 창의적 발상이 아닐까 싶다. 이 지역 출신의 금수현은 동래여고․경남여고․부산사범학교․통영고교에서 교육자로서 눈부신 활동을 펼쳤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작곡가로서, 행정관료로서, 극장 경영자로서, 언론인으로서, 유치원 설립자로서, 악단 책임자로서, 잡지 발행인으로서, 음악협회 회장으로서 다양하고 폭넓은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그런 까닭에 작곡가 금수현, 나아가 음악과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발전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작곡가 윤이상이 핵심 콘텐츠가 된 통영은 불과 10년 만에 인구 14만의 조그만 어촌동네가 마침내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도시로 우뚝 섰다.
‘금수현’의 관계망은 매우 넓다. 우선 유․소년시절, 삶의 터전이었던 대저공립보통학교, 낙동강 둑방길, 나루터, 대저면 사무소 등의 장소성을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음악과 관련해서 부인 전혜금 여사는 피아니스트이고, 아들 금난새와 금노상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90년대에는 인근의 진해 안골동에 안골음악촌이 운영되었고, 여기서 가곡 ‘안골포’와 오페라 ‘장보고’가 씌어졌다.
또한 금수현은 부산음악계 1세대 작곡가로 부산의 음악가들과도 인연이 깊다. 더구나 부산에서 행했던 음악경연대회, 음악매체 발간, 가곡 및 음악극(뮤지컬)의 창작과 공연, 합창운동 및 개창운동 등을 콘텐츠화할 수 있다. 나아가 금수현 음악콩쿠르, 혹은 금수현 음악제 개최, 금수현 음악상 제정, 금수현 음악관 건립 등으로 사업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