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5·18
거리에 넘치던 분노의 물결
오늘, 뜨거운 대지를 비가 적신다.
2013. 5. 19 들풀처럼.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석양 비낀 산길을.
땅거미 속에 긴 그림자를 묻으면서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콧노래 부르는 것도 좋을 게다.
지나고 보면 한결같이 빛바랜 수채화 같은 것.
거리를 메우고 도시에 넘치던 함성도,
물러서지 않으리라 굳게 잡았던 손들도.
모두가 살갗에 묻은 가벼운 티끌 같은 것
수백 밤을 눈물로 새운 아픔도,
가슴에 피로 새긴 증오도,
가볍게 걸어가고 싶다, 그것을 모두
땅거미 속에 묻으면서.
내가 스쳐온 모든 것을 묻으면서,
마침내 나 스스로를 그 속에 묻히면서.
집으로 가는 석양 비낀 산길을.
- 신경림, '집으로 가는 길', 『뿔』(창작과 비평사, 2002), 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