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2 | 4면
[허남식 시정 10년] ③ 문화(관광) 분야
부산문화재단 출범·원도심 재생 등 평가받을 만한 성과
▲ 지난 6일 부산일보사 10층 고메에서 에서 열린 허남식 시정 10년 문화(관광) 분야 평가 좌담회. 왼쪽부터 이승욱 안녕광안리 대표,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 김창욱 부산시민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이지훈 필로아트랩 대표. 이재찬 기자 chan@
'허남식 체제'의 부산시정에서 문화분야의 중요도가 커졌다. 전문가들은 허남식 시장의 문화분야 시정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지난 6일 본사 10층 고메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참가자는 구모룡(문학평론가)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김창욱(음악평론가) 부산시민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이지훈 필로아트랩 대표, 이승욱 안녕광안리 대표다.
2009년 문화재단 설립 이후
활동 다양성 강화 긍정 효과
또따또가·산복도로 사업 호평
민간단체 경상보조금 지급
체계적 시스템 갖추지 못해
공정한 기준과 평가 절실
- 문화행정의 타깃을 전문 예술인과 생활예술인·시민들로 나눠 봤을 때 성과와 과제는 어떠한가?
구모룡 "예술인과 각종 예술인 단체가 대체로 행정에 의존적이었다. 전문 예술인들의 자기혁신이 있었는지, 스스로 살펴봐야 한다. 다행히 2009년 문화재단이 들어서면서 행정적 시스템이 구축되고, 지역 문화예술활동에 다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새로운 장르, 다원예술 등 21세기에 맞는 문화예술 활동을 충분히 육성하기에는 예산이 매우 부족하다. 혁신은 공무원들만의 몫이 아니며, 문화예술인 스스로의 혁신이 우선이다. 거버넌스 체계도 예술인 단체, 각종 조직위, 문화재단, 부산시로 흩어져 복잡하다. 영역 간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승욱 "부산도 좀 늦긴 했지만 문화재단을 만들어 관이 주도하는 흐름을 수정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 단위의 문화재단은 아직 없다. 시민문화를 활성화하는 풀뿌리 실행기구로서, 광역단위 문화재단과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부산시가 100억 원가량을 민간단체 경상보조금 형태로 문화예술계에 지원하고 있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이나 평가가 없다. 예산을 쉽게 나눠 주면 관변단체화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민간에 대한 예산 지원은 공정한 기준과 평가가 절대적이다."
이지훈 "전문예술과 생활예술이 순환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아직은 과도기다. 문화예술인 스스로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 예술활동의 공적 가치를 입증해야 하고, 그 방법은 결국 좋은 작품을 내놓는 것이다. 전문 예술인에게는 선택과 집중의 가치를 적용하고, 생활예술에 대해서는 보편적 복지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 예술계에 대한 민간단체 경상보조금에 대해서는 사후 평가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김창욱 "예술단체가 하는 사업 중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집행부 일부와 행정기관 상층부의 협의에 따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부산시는 전체 문화예산을 문화재단에 넘겨준 것도 아니다. 국·시비를 절반씩 지원받아 4억5천만 원으로 최근 치른 제4회 부산마루국제음악제 개막식에 가 보니 관객이 1천 명도 안 되었다. 반면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최근 정기연주회를 연 부산시민오케스트라는 유료 티켓이 1천 장 이상 팔렸다. 행정기관과 예술 단체는 서로 건강한 긴장관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
- 지역사회에서 부산다운 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시정이 얼마나 이를 뒷받침했다고 보는가? 영화·영상도시를 내세우고, 인접 국가들과의 국제교류에도 나섰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지훈 "부산다움을 찾을 때는 과거의 가치 발굴도 중요하지만, 현재와 미래의 관점도 결부돼야 한다. 급격한 도시화를 이룬 부산 같은 도시는 아주 가까운 근대도 역사적 유산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09년 남선창고 철거를 내버려 둔 것은 치명적 실수였다. 지금이라도 백산기념관 거리 주변의 오래된 근대유산건물을 공세적으로 매입해 보존해야 한다. 영상정책은 전반적으로 잘 됐다지만 전문가 중심으로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시민과 관객들의 담론 활성화나, 시민들의 다양한 영상문화 향유가 아직은 부족하다."
구모룡 "제2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산다움'이 부족했다. 이제는 수도에 대응하는 부산이라기보다, 동아시아의 바다와 내륙을 교차하는 핵심지점으로 봐야 한다. 최근에야 동아시아 네트워크 속의 부산이라는 관점에서 문화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축제나 예술활동도 경험 자산으로 축적돼 기억과 이야기로 남아야 하는데 그동안 이런 면이 부족했다. 원도심 재생은 자성대부두에서, 영도, 남항까지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또 하나의 신도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산이 영화·영상도시라고 내세우지만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아 중앙정부의 법적 지원 근거가 부족한 상태다. 예산 확보를 위한 법 제정이 시급하다. 그런 예산을 활용해 원도심에 비어 있는 공공건물을 연극 공간으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 연극이 영화를 든든하게 뒷받침할 것이다."
이승욱 "호평받는 또따또가나 산복도로 사업이 시의 도심재생 정책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아직은 아이디어나 이벤트 차원에 머물러 있다. 이런 사업을 시정의 주요 골격으로 삼는 것이 다음 시장의 과제다. 또 예술인들이 지역을 활성화시켜 가치가 오르면 급등한 임대료 때문에 쫓겨나는 일이 많다. 또따또가도 임대료 지원 방식으로 하지 말고, 공간을 매입해 선점해 둘 필요가 있다. 영화산업은 서울과 영화사 유치 경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화의 미래 인력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하는 등 대안적인 접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는 문화예술의 활력으로 도시재생을 꾀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사진은 지난 4월 부산 중구 중앙동 40계단 앞에서 열린 또따또가 2차 사업 개소식 모습. 부산일보 DB
'크고 강한' 정책 고수… 시민과 소통 통한 '속살 채우기' 부족
보여 주기·이벤트성 사업
시민 행복 역행할 수 있어
단기 성과 집착 '아쉬움'
기관·단체장 공모제 운영
지역 마인드 배려 부족
전문성만 중시하다 '뒷말'
- 문화와 관광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는가?
김창욱 "부산시는 시민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외부에 부산이 어떻게 보여지는가를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감천문화마을이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만, 실제 가 보면 그곳 주민들의 삶은 불편하고 척박하다. 오래 머물면서 그 지역 주민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할 대책이 필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냐는 것을 우선 살피는 것이어야 한다."
이지훈 "감천문화마을이나 산복도로 르네상스 등은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운데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거주민의 행복과 관광객 유치가 양립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문화관광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여긴 부산이니까'라며 부산을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공간으로 떠올리는 타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부산으로서는 기회다."
구모룡 "어차피 관광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부인의 시각만으로 도시를 조성해 관광객을 유치해서는 안 된다. 울산의 경우 소득 수준은 높지만 문화재단도 없고, 전반적 문화 환경이 부산보다 처진다는 평이 있다. 부산은 충분히 애정을 가질 만한 도시다."
이승욱 "KTX 개통 이후 수도권 관광객이 기대나 설렘을 갖고 부산을 많이 찾게 된 것도 호재다. 감천문화마을은 수십 년 퇴적된 역사의 결이 있기 때문에 의미와 멋이 있는 것이다. 시정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려다 보니 이벤트로 자꾸 해결하려고 한다."
- 시민들의 문화 향유는 문화예술공간에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 문화시설 정책은 어떻게 보나?
구모룡 "오페라하우스를 놓고 논란이 많다. 부산에 제대로 된 문화시설이 크게 부족하다. 롯데그룹이 사업비 전액을 들여 짓도록 시민여론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하드웨어에 상응하는 소프트웨어와 휴먼웨어를 갖추면 된다. 구·군 문화회관은 공연시설로 부적합한 측면이 있다. 지역마다 특색 있는 작은 박물관이나 도서관도 크게 부족하다. 아파트 단지 내 문 닫은 유치원을 도서관으로 바꾸는 게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산만 따지지 말고, 법·제도를 개선해 문화공간을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지훈 "구·군 문화원은 사람 수도 늘리고, 전문성도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 구·군 공연시설은 각 지역 인구나 지리적 여건에 맞게 특성화되어 있지 않다. 부산 정도의 대도시에는 마을버스도 있고 고속버스도 있어야 한다. 크고 작은 시설이 골고루 있고, 역할 분담을 하면 된다. 먼구름 한형석 선생이 한국 최초의 오페라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당위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재정과 정책 균형 등의 측면에서 얼마나 합리성과 의지를 갖고 있느냐다."
이승욱 "대형시설 못지않게 생활권 문화시설이 중요하다. 각 구·군은 공연장 운영과 축제에 매년 수억 원씩을 쓴다. 이런 것을 맡을 거버넌스 조직으로 구·군 단위 문화재단이 필요하다. 부산시가 올해 거액을 들여 홍티아트센터, 사상인디스테이션 등의 문화공간을 지었지만 운영예산은 쥐꼬리이거나 거의 없다. 차라리 문화공간 건립예산을 기초단체 문화재단 설립과 기존 문화공간에 투입하면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예술인들의 자발적 대안예술공간이 성과를 거두자 행정기관이 비슷한 공간을 직접 짓는데, 그 돈을 기존 민간 예술단체에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다."
김창욱 "작은도서관은 많이 지었지만 문 닫고 안 열리는 곳이 많다. 장서 구입, 사서 인건비, 문화프로그램 등 종합적인 운영예산이 없기 때문이다. 부산오페라하우스도 구체적 운영 계획은 없었다. 구·군 문화회관은 현재 지자체의 사업소처럼 인식되고 있다. 기획과 운영에 필수적인 예산은 투입되어야 하고, 책임성과 연속성을 갖는 운영진이 포진해야 한다."
- 허 시장은 지난 3월 문화분야 권한을 민간에 넘기겠다며 관련 기관·단체장 공모제 등을 도입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구모룡 "기관·단체장이 공무원이든 민간인이든 능력이 있어야 한다. 부산의 문화정책을 내놓는 브레인 역할이 부산발전연구원과 한정된 부산시의 인적 네트워크에 국한돼 있다는 것이 한계다. 민간 소집단들을 정책 그룹으로 육성하는 다변화 정책이 필요하다."
이지훈 "문화분야 기관·단체장의 경우 민간인이냐 공무원이냐를 따지는 것보다는, 전문성과 공공성 기준을 함께 갖추고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승욱 "서울에서 활동하다 내려온 기관·단체장을 비판하면 부산시는 지역에 역량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얘기한다. 서울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전문성은 있을지라도, '지역을 위한다'는 공공성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김창욱 "꼭 지역 출신 인사를 기관·단체장으로 임명해야 한다기보다는 자율성 회복·변화 의지, 지역 밀착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부산시의 인사는 적당히 코드만 맞추면 되는 것 같다.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 시스템이 절실하다."
정리=이호진 기자 ji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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