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오 거룩한 밤

浩溪 金昌旭 2016. 12. 24. 08:34

또 다시 한 해의 끝자락이다. 언제나처럼 올해도 다사다난했다. 때때로 밤거리엔 성탄 트리가 불을 밝히고, 이따금 구세군의 방울소리도 들려오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차고 어둡기만 하다. 겨울은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더없이 서러운 계절이다. 갈수록 양극화되는 내일과 모레는 더욱 그러하리라.

 

아당의 「오 거룩한 밤」(O Holy Night, 1847)을 다시 올린다. 1년에 단 한 번 거룩하게 보내기 위하여. 작곡자 아돌프 샤를 아당(Adolphe Charles Adam 1803-1856)은 오페라와 발레음악을 주로 썼는데, 발레곡으로 유명한 「지젤」(1844)을 남겼다. 2016. 12. 24 들풀처럼

 

비욜링(J. Björling 1911-1960)이 노래하는 O Holy Night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 짜리 두 개를 보였다.

 

김종삼(金宗三 1921-1984)의 「장편」(掌篇) 2라는 시다. 권명옥이 엮고 해설한 『김종삼 전집』(나남출판, 2005)의 200여 편 가운데 하나다.

 

총독부가 있을 때라면, 광복 이전 시기를 말한다. 어린 거지소녀가 똑같은 처지의 거지 아비와 어미를 이끌고 청계천변에 있는 10전 짜리 균일상 밥집 문턱에 당도한다. 어버이가 모두 장님이었던 까닭에 소녀는 그들의 손을 놓을 수가 없다.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날을 맞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주인영감은 누추한 몰골을 한 이들이 자기 집에 밥 얻어 먹으러 들어올까 하여 문전박대한다.

 

그러나 어린 거지소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전 2개를 내보이며 손님으로서 당당하게 밥을 사먹겠다는 의사를 표명한다. 10전 짜리 동전 2개는 몇 날 며칠, 어쩌면 몇 달에 걸쳐 거지소녀가 어렵사리 구걸해서 모은 돈인지 모른다. 그러나 소녀는 자기가 먹을 밥값은 아직 마련하지 못했나 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장님 거지들의 팍팍한 삶을 담으려 했을지 모른다. 또는 거지인 장님 부모에 대한 거지 딸의 극진한 효성을 말하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인은 굳이 자신의 생각이나 의사를 시시콜콜하게 늘어놓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그저 눈 앞에 펼쳐진 순간적인 모습을 담담하게 자신의 앵글에 담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김종삼은 현실의 객관적인 묘사, 즉 시적 리얼리즘의 놀라운 성취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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