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린이의 날'. 1923년 5월 1일 방정환(方定煥) 선생의 '색동회'에 의해 선언되었던 것이 이후 1975년 5월 5일 마침내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아침무렵 비가 조금 내리더니, 지금은 말짱하다. 외려 따가운 햇살이 온몸으로 쏟아져 내린다.
이제 아이들의 처분을 기다려야 할 때다. 어디로 가자고 할지, 무엇을 사달라고 할지… 문득 몇 해 전에 썼던 칼럼 하나가 생각났다. 유감스럽게,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2017. 5. 5 들풀처럼.
『부산일보』 2011. 5. 16 (27)
4월이 '잔인한 달'(엘리엇)이라면, 5월은 '계절의 여왕'(노천명)이다. 또한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처님 오신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갖가지 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이기도 하다. 더욱이 달력에는 평일인데도 선홍빛 숫자가 두 개씩이나 아로새겨져 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날뛰게 한다.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세계 '꼴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에는 어린이, 어버이, 성년, 부부가 모두 공존하고, 그것은 사회공동체의 기초를 이룬다. 다들 중요한 포지션을 갖고 있다는 의미겠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무게중심이 유난히 '어린이'에게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하고한 날 가운데 유달리 '어린이' 날만 공휴일로 대접 받는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로 시작해서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으로 끝나는 '어린이날 노래'(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어린이는 '나라의 기둥' '나라의 보배' '미래의 주인공', 나아가 '어른의 아버지'와 같이 온갖 수사로 치장되기도 한다.
과연 어린이는 실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어린이는 8시 20분에 시작하는 0교시 수업과 7~8교시 보충수업에서 문제풀이를 힘들게 하고 있지 않는가? 0교시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아침밥까지 거르고 있지 않는가. 매일같이 숨 돌릴 새도 없이 일제고사(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 과목인 국·영·수에 강제되고 있지 않는가. 학교를 파하고는 영어 수학 컴퓨터 태권도 피아노 학원으로 내몰리고 있지는 않는가.
아닌 게 아니라, 한국방정환재단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2011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의 국제 비교'에서 주관적 행복지수는 OECD 23개국 중 한국이 '꼴찌'를 차지했다. '주관적 건강' '학교생활 만족도' '삶의 만족도' '소속감' '주변상황 적응' '외로움' 등 6가지 영역에 대한 응답률을 수치화한 주관적 행복지수는 한국 어린이·청소년의 경우 65.98점으로 최상위를 차지한 스페인(113.6점)보다 47.6점이 낮고, OECD 평균(100점)에는 34점이나 모자란다. 겨우 '꼴찌'를 면한 헝가리(86.7점)보다도 무려 20점 이상이나 차이 난다. 2009년 64.3점, 2010년 65.1점으로 OECD 국가 가운데 한국은 3년 연속 '꼴찌'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 땅에 사는 것이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입시교육에 찌든 초·중등학교 교실에서 해방되면 만사형통일까? 졸업이 곧 실업인 88만 원 세대, 직장마다 휘청거리는 40~50대,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 세계 1위, OECD 국가 중 노인 10만 명당 자살자 수 세계 1위….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는 '한 자녀 더 갖기 운동연합'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본부'같은 것이 만들어지고, 잇단 '낳기' 캠페인도 벌어진다. 그것은 1960년대 '많이 낳아 고생 말고 적게 낳아 잘 키우자'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거나, 1970년대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혹은 1980년대 '둘도 많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등의 출산억제 캠페인과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을 노동력으로만 보는 정부
오늘날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1.22명으로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1.37명, 독일 1.38명, 영국 1.96명, 프랑스 2.0명, 미국 2.09명보다 낮은 수치다. 저출산 사회는 노동력 부족으로 국가경쟁력이 저하하고, 급격한 고령화 사회는 급기야 국가 재앙이 된다는 것이 정부의 오롯한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들의 자녀 양육비에 대한 부담, 일과 육아 병행에서 오는 워킹맘의 고충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더구나 국민을 세수확보를 위한 노동력 정도로만 인식하는 정부의 천박함과 예의 없음은 대한민국이 왜 '꼴찌' 국가로 헤매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딸 셋 둔 대한민국 애비로서 한 마디 하겠다.
"사람은 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