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부산마루국제음악제,
초라한 부산음악인 시리즈
글_김창욱(음악평론가)
올해로 12번째를 맞은 2021년 부산마루국제음악제가 지난 8월 27일부터 9월 26일까지 1개월에 걸쳐 부산 전역에서 열렸다. 음악제의 타이틀은 ‘내 영혼의 친구여’. 곧 세계적 역병 코로나19를 영혼의 친구인 음악으로 위로 받고 극복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음악제 역시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무대가 꾸며졌다. 메인콘서트, 앙상블 콘서트, 프롬나드 콘서트, 국제영상음악제, 부산음악인 시리즈, 프린지 콘서트 등이 그러하다. 그 가운데 음악제의 핵심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메인콘서트와 프롬나드 콘서트로 보였다.
메인콘서트는 모두 4회의 시리즈로 열렸다. BMIMF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운명을 만나다’(8월 27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정치용의 지휘로 손열음(피아노)이 협연했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고전 작곡가들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아름다운 기억’(9월 3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는 서진의 지휘 아래 김현아(바이올린)·에르완 리샤(비올라)가 협연했고, 모차르트와 쇼스타코비치의 고전과 20세기를 연주했다.
또한 BMIMF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우리들의 열정’(9월 9일 을숙도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는 윤승업의 지휘로 알렉 쉬친(피아노)이 협연했고, 모차르트·그리그·브람스 등 고전·낭만시기의 음악에 천착했다.
마지막 메인콘서트 ‘가슴 속에 영원하라’(9월 15일 하늘연극장)에서는 지휘자 김경희가 이끄는 서울챔버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브람스·시벨리우스·드보르작·보테시니·케이코 아베 등 고전에서 낭만, 20세기를 넘나들었다. 여기서는 이현주(플루트)·임채문(더블베이스)·류지원(플루트)·김찬이(피아노)·문시은(바이올린)·강윤서(마림바) 등이 다양한 기악곡을 협연했다.
그러나 본 음악제를 위해 만들어진 BMIMF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무대가 메인콘서트의 4회 중 2회를 차지했다는 점, 지역 민간 오케스트라가 메인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 등은 퍽 아쉬운 일이다. 아울러 메인무대의 레퍼토리가 서양 고전과 낭만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빈약한 도전성과 실험성을 보여주었다.
프롬나드 콘서트 또한 모두 4회의 시리즈로 짜여졌다. 뉴월드챔버오케스트라는 9월 1일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과 9월 8일 영도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KNN방송교향악단은 9월 2일 동래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판도라밴드는 9월 16일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에서 각각 무대를 펼쳤다.
그런데, 4회 중 2회가 뉴월드챔버오케스트라의 무대였다. 이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금난새가 이끌었던 유라시안 필하모닉의 후신으로 필하모닉·챔버·스트링·앙상블 등의 다양한 편성으로 연주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특정 오케스트라에 편중된 무대는 다양한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음악에 대한 관객 향수권(享受權)을 제한하고 말았다. 더욱이 3회의 프롬나드 콘서트 오케스트라 지휘는 몽땅 금난새가 맡았다. 지나친 편중이 아닐 수 없다. 프롬나드 콘서트 무대에 오를 만한 지휘자가 정녕 없었다는 것인가!
화려하고 풍성한 마루국제음악제의 한편에서는 초라한 행색의 부산음악인 시리즈가 3회에 걸쳐 열렸다. ‘음악영재’(9월 9일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 ‘라이징 스타’(9월 10일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 그리고 ‘부산음악인’(9월 14일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이 그것이다.
‘음악영재’는 초·중학생을, ‘라이징 스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재학·졸업생을, 그리고 ‘부산음악인’은 모두 부산출신의 해외 유학파 전문 연주자를 대상으로 한 무대였다. 특히 ‘부산음악인’은 지역 청년음악가들의 데뷔무대이자 미래 부산음악을 이끌어 갈 유망주들의 등용문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레퍼토리는 라모·바그너·마스네·드뷔시·라벨·쇼스타코비치·바인·타발리오네 등 바로크에서 낭만, 근대 및 현대 음악을 망라했고, 연주자로는 조민현(피아노)·강주희(플루트)·안수빈(첼로)·김대훈(색소폰)·김우진(바리톤)·곽소정(피아노) 등이 무대를 꾸몄다.
라모의 ‘가보트와 6개의 변주곡’과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온딘’을 연주한 피아니스트 조민현은 부드럽고 섬세한 텃치와 정제된 피아니즘을 보여주었고, 타발리오네의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무대에 올린 플루티스트 강주희는 투명한 음색과 자연스런 패시지 진행이 돋보였으며, 쇼스타코비치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한 첼리스트 안수빈은 활달하고 변화무쌍한 패시지를 무리없이 소화해 냈다.
또한 드뷔시의 ‘랩소디’를 연주한 색소포니스트 김대훈은 악기가 가진 음량과 음색이 도드라졌고, 바그너의 ‘저녁별의 노래’와 마스네의 ‘사라지는 환상’을 노래한 바리톤 김우진은 시종 안정된 톤(tone), 명확한 딕션(diction)이 돋보였다. 특히 피아니스트 곽소정은 칼 바인의 ‘피아노 소나타’ 제1번을 연주했는데, 그녀는 섬세하고 격정적인 감정표현과 자유자재한 테크닉을 두루 보여주었다. 흔치 않는 20세기 음악에 대한 도전성과 실험성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일정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청년음악가들의 연주무대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한 음악회 형식과 진행과정은 사뭇 초라한 모습이었다. 순서지에 따라 연주자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그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조명이 켜지고, 연주가 끝나자마자 퇴장하고 그때마다 조명이 꺼진다. 연주곡에 대한 어떠한 설명이나 해설도 없다.
그래서 말이다. 하다못해 진행자 한 사람이라도 내세웠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가 짧게나마 연주곡을 소개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연주자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위한 짧은 멘트를 날렸다면 어땠을까? 그렇지 않으면, 연주곡과 연주자를 소개하는 문자나 사진, 혹은 영상을 꼭지마다 삽입해서 화면에 띄웠다면 어땠을까? 문화란 반드시 크고 화려한 것이 아니다. 의외로 작고 섬세한 것이 문화다.
한편 꼭 10년 전, 나는 ‘부산 없는 부산국제음악제’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여기서 나는 “명색이 ‘부산’ 국제음악제라면 마땅히 부산의 빛깔과 향기가 스민 ‘부산적인’ 음악, 부산의 작곡가들이 만든 음악, 부산의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음악이 적지 않았어야 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썼다(부산일보 2010년 10월 5일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부산’ 마루국제음악제는 얼만큼 변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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