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와 피아노의 끊임없는 대화
양욱진 첼로독주회
김 창 욱
음악학박사, 음악풍경 기획위원장
5월(May)은 ‘봄의 여신’(로마 신화)이자 ‘계절의 여왕’(노천명)이다. 부드러운 바람, 따사로운 햇살, 높푸른 하늘이 한껏 열려 있다. 또한 5월은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날,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곳에 마실이나 나가보면 어떨까? 나가서 달콤한 음악에도 귀를 적셔보면 어떨까?
지난 5월 17일(화) 저녁 부산문화회관 챔버홀에서는 첼리스트 양욱진의 독주회가 열렸다. 중후하고 품격 있는 첼로의 선율과 음향이 청중의 마음까지 한껏 적셔 주었다.
양 첼리스트는 줄리아드·메네스·뉴욕주립대 등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대학에서 수학했고, 벌써 10여 년 전에 부산에 정착했다. 부산시향 첼로 수석을 지냈고, 부산마루국제음악제·김해국제음악제·창원국제실내악축제 등 유수의 음악축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더구나 그의 눈부신 연주력 또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첼로독주회에는 모두 3편의 음악을 무대에 올렸다. 베토벤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5번, 슈만의 「환상소곡」(op. 73), 그리고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op. 19)가 그것이다. 서양음악 역사로 보자면, 18세기 고전시대, 19세기 낭만시대, 19세기 말 후기낭만시대와 같이 각기 시대를 달리하는 음악으로 프로그램이 꾸며졌다. 첼로음악의 시대별 변화과정과 그 특징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베토벤은 모두 5곡의 첼로 소나타를 썼다. 그것은 당시 첼로의 명수였던 베른하르트 롬베르그(B. Romberg)의 아름다운 선율과 풍부한 음향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리라. 그 가운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Sonata for Cello and Piano) 제5번(1815)은 전형적인 3악장 구조에도 불구하고, 대위법적 기교, 푸가기법 등을 활용함으로써 이전과 대비되는 특징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제1악장은 자유분방하면서도 대담한 악상으로 진행된다. 피아노의 강렬한 포르테(f)에 뒤이어 우뚝 솟는 듯한 첼로의 위엄을 보여준다. 첼로는 시종 여유로움과 안정감을 유지하면서도 약동하는 생명력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제2악장은 느리지만 풍부한 서정성이 돋보인다. 여리고 부드러운 악상, 첼로 특유의 음색과 음향이 투명하게 표출되었다. 그리고 제3악장은 푸가 주제의 단편으로 시작하는데, 매우 활달한 성격이다. 무엇보다 첼로와 피아노가 주고 받는 대화와 투티(tutti)의 일체감이 두드러졌다. 그것은 피아니스트 박민선의 자유자재한 연주력, 첼로와의 상호 조화와 균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슈만은 여러 개의 짧은 소품을 연곡(連曲)으로 묶은 소곡집(小曲集)을 잇따라 작곡한 바 있다. 대개 피아노 소곡집이다. 「나비」(Papillons, op. 2), 「카니발」(Carnaval, op. 9), 「어린이 정경」(Kinderszenen), 「환상소곡집」(Fantasiestücke, op. 12)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피아노 이외의 소곡집이 없지는 않다. 바로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소곡집」(Fantasiestucke, op. 73)이 그것이다. 1849년에 작곡된 이 악곡은 본디 피아노와 클라리넷(A조)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클라리넷 대신에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연주해도 무방하다. 여기에는 모두 3편의 소곡이 실려 있다. a단조로 조용하게 시작되는 악곡은 나아갈수록 템포가 빨라지는 등 악상의 변화에 따라 감정도 점차 고조된다. 이미지를 드러내는 시적(詩的) 표제는 없으나, 각각의 소곡마다 일정한 연주 지시어가 붙어 있다.
제1곡 ‘상냥하게’는 어두운 음색의 첼로 주제를 피아노의 잇딴 3연음으로 지탱한다. 또한 아르페지오(arpeggio)로 반복되는 피아노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제2곡 ‘생생하게, 가볍게’는 간결하게 시작된다. 제1곡에서 취해진 주제를 피아노에 이어 첼로가 반복한다. 역시 피아노와의 조화로움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제3곡 ‘서둘러, 정열을 담아서’는 A-B-A’의 3부형식으로 구성된다. 첼로의 갑작스런 템포 변화, 첼로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 피아노와의 일체감이 돋보였다.
그러나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라흐마니노프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Sonata for Cello and Piano, op. 19)였다. 1901년에 씌어진 이것은 이전의 연주곡들에 비해 여러 점에서 현저한 모습을 보였던 까닭이다. 연주시간 35분을 넘어서는 장대함, 주제의 일관된 반복과 변형, 변화무쌍한 악상 변화 등이 그러했다. 특히 첼로의 자유자재한 테크닉, 첼로와 피아노의 긴밀한 조응(照應) 관계가 돋보였다. 그것은 두 연주자의 음악적 교감은 물론, 오랜 연습을 통한 빈틈없는 호흡 맞춤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제1악장은 짧고 진중한 서주(序奏)에 이어 첼로의 주제 선율이 부각되고, 피아노의 아르페지오가 점차 악곡의 긴장도를 강화시킨다. 부드러움에서 재기발랄함, 나아가 피아노의 카덴짜(cadenza)에 뒤에 나타나는 첼로의 격렬한 진행이 마침내 악곡의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한다. 제2악장은 첼로와 피아노의 대화와 협력이 두드러진 스케르초(scherzo) 악장이다. 저음부의 피아노 위에 첼로의 피치카토(pizzicato)가 효과적으로 운용되었고,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선율적 서정성과 화음의 꽉찬 충만감, 후반부에 나타나는 피아노의 화려한 음형과 기교적 패시지가 두드러졌다.
또한 제3악장은 피아노의 아르페지오 위에 첼로의 주제 선율이 드러난다. 첼로와 피아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화를 이어간다. 서정적인 피아노와 첼로의 유장함이 돋보였다. 마지막 제4악장은 첼로의 서정적이고 자유분방한 테크닉, 이를 뒷받침하는 피아노의 효과적인 표현력, 나아가 첼로와 피아노의 화려한 피날레가 청중의 열광적인 반향을 이끌어 냈다.
이번 무대는 각각의 연주곡이 만들어진 시기가 달랐으나, 모두 낭만적인 서정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었다. 여기에 자유롭고 대담한 첼로, 피아노의 능란한 협주, 첼로와 피아노의 끊임없는 대화와 협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했다. 그것은 객석에 자리한 청중의 참여도와 만족도를 드높이는 기제(機制)이기도 했다. 다만, 오늘날 우리시대의 음악이 없었다는 점은 퍽 아쉬운 일이었다.
'문화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은 힘이 세다 (2) | 2022.11.29 |
---|---|
오페라하우스 운영 문제 (0) | 2022.08.25 |
[공연평] 부산음악인 시리즈 (0) | 2021.10.01 |
음악전용 공연장이 필요한 이유 (0) | 2019.01.02 |
강서에 문예회관이 필요한 이유 (0) | 2018.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