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가 밝았다. 마침내. 신새벽부터 객(客)들이 해맞이 사진을 찍어 올리고, 어떤 이들은 임인년(壬寅年) 호랑이 그림에 '해피 유 이어'를 장착한 실탄을 사방천지에 난사(亂射)하기도 했다. 간밤의 숙취(宿醉) 탓에 견고한 가슴 하나 준비치 못했던 나는 갑작스런 유탄(流彈)에 온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한 해가 가면 한 해가 오고, 이 해가 가면 다시 저 해가 올 것이다. 머잖아 저 해는 이 해가 되고, 그 해는 저 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보라! 해가 바뀐들 무에 달라지랴? 맹렬히 떠오르던 아침햇발도 어느덧 스러지고 있다. 정월 초하루가 저물고 있다. 마침내. 2022. 1. 1 들풀처럼
역사에서는 노숙자들이 여전히 신문지를 덮고 누워 자고
지하도 입구에서는 다리 없는 노파가 오늘도 손을 벌리고 엎드려 있다
대형 텔레비젼에서는 화사하게 차려 입은 젊은이들이
가볍고 행복한 새 세상을 구가하고
청소부들이 모닥불에 검은 손을 쬐고 있다
모두들 새 천년의 첫 해맞이를 위해 동해로 달려간
정월 초하루 청량리 역전에서
- 신경림, 遁走, '뿔'(창작과비평사, 2002), 3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