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安國) 스님께서 발행하는 참선도량 부전선원 소식지 「희망붓다」 창간호(2022년 가을)에 한 필을 썼다. 일찍이 김승옥(金承鈺)이 ‘염소는 힘이 세다’고 했지만, 그 염소는 오늘 아침에 죽었다. 그러나 음악은 죽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에 어떤 힘이 있는지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2022. 11. 29 들풀처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고래도 춤추게 할 정도의 칭찬이 무릇 사람을 춤추게 하지 못하랴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요컨대 칭찬의 중요성을 나타낸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빗대어 본다면, 음악은 식물도 춤추게 합니다. 식물이 춤출 정도의 음악이라면 능히 사람도 춤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음악의 힘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음악은 빵과 국수, 술과 장을 발효시키는데도 큰 도움을 줍니다. 더 바삭거리는 빵, 면발이 더 쫄깃한 국수, 더 깊은 맛이 우러나는 술과 장을 만드는데 음악이 쓰입니다. 음악이 효모균을 활성화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음악은 젖소에게도 들려줍니다. 음악을 들려줄 때 그렇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서 우유 생산량이 무려 30% 이상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음악은 도축장에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도축 전에 동물에게 음악을 들려줄 경우, 그들은 죽음에 대한 긴장과 공포를 잊게 되고, 그 결과 고기의 육질이 한층 부드럽고 맛도 좋다는 것입니다.
음악이 식물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는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도로시 리탤랙(D. Retallack)이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얻은 여러 현상을 고찰한 「음악과 식물」(1968)을 펴냈습니다.
그녀는 똑같은 환경조건을 갖춘 두 개의 방에 똑같은 식물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식물에게 들려준 음악은 종류가 서로 달랐습니다. 한 쪽은 부드럽고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다른 한 쪽은 시끄러운 하드락이나 헤비메탈 음악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려 주었을 때 식물들은 잎이 무성해지고 생장이 빨라진데 비해, 락이나 헤비메탈 음악을 들려 주자 시들시들하거나 말라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한 걸음 더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서양과 동양의 음악을 각각 들려주기로 했습니다. 하나는 바흐의 「오르간 소곡집」 가운데서 성가대 독주곡, 다른 하나는 인도의 시타르(sitar)로 연주한 전통음악이었습니다.
식물들은 바흐를 매우 좋아한다는 징후를 보였습니다. 그들은 오르간 독주곡 쪽을 향해 무려 35도나 기울었습니다. 매우 놀라운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 기록은 시타르 음악에 의해 곧 깨지고 말았습니다. 시타르 음악 쪽으로 기운 식물들의 각도는 60도를 넘어 거의 수평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가까이에 있던 식물은 아예 스피커를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식물이 음악에 반응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도 있었습니다. 구전으로 전해져 올 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말입니다. 예컨대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농사꾼의 근면·성실을 뜻하는 말이지만, 실은 식물이 소리를 듣고 생육한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옛 사람들은 벼가 자라는 들판에서 풍물놀이[농악]를 즐겼습니다. 그것은 풍년을 기원하고 농사의 고단함을 씻으려는 의도입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해충을 제압하고, 원기왕성한 벼의 생장을 돕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풍물놀이에 쓰인 악기로는 꽹과리·징·장구·북 등이 있습니다. 꽹과리는 천둥소리, 징은 바람소리, 장구는 빗소리, 북은 구름소리를 각각 상징합니다.
또한 쇠로 만든 꽹과리와 징은 하늘[天]을, 가죽으로 만든 장구와 북은 땅[地]을 뜻하며, 이들을 다루는 사람[人]까지 합하면 삼재(三才)가 됩니다. 천지인의 삼재가 어우러진 음파는 매우 강력해서 해충의 오장을 찢는 동시에 벼에게는 오히려 흥을 돋워 벼 스스로 병을 치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연구결과에서도 속속 확인되고 있습니다. 농촌사회발전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이완주 박사는 농사에 가장 골칫거리인 진딧물을 퇴치하는데 음악이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메뚜기·무당벌레·개미와 더불어 작물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것이 진딧물입니다. 진딧물은 얼핏 잘 보이지도 않는 해충이지만 한 순간에 수 천, 수 만 마리를 양산할 정도로 번식력이 뛰어납니다. 복숭아 진딧물을 배추잎에 키우며 부드러운 음악을 지속적으로 들려 주었더니, 연두색의 그것이 모두 빨갛게 변하고 수명도 짧아졌습니다. 더구나 배추 포기당 평균 560마리의 진딧물이 음악을 들려 주고 나서는 90% 가까이 줄어 포기당 65마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 박사는 식물도 음악을 들을 뿐만 아니라, 생장과정이나 행동이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그린음악농법’을 창안했고, 이를 농촌 현장에 상용화하는데 성공했습니다.
WHO(세계보건기구)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죽을 때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감각은 청각입니다. 시각, 미각, 후각, 촉각, 청각 순으로 없어집니다. 요컨대 언어·시각능력을 모두 잃는다해도 음악능력 만큼은 마지막까지 살아 남는다는 것입니다.
장 콕토가 말했습니다. “내 귀는 소라껍데기, 바다소리를 그리워 하오.”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매일 한 번씩 즐겁고 유쾌한 음악소리에 귀를 적셔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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