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송방송 박사의 '증보 한국음악통사'(서울: 민속원, 2007)
김 창 욱
‘한국음악사’(韓國音樂史)는 ‘한국음악’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다. 여기서 ‘한국음악’이 ‘한국에서의 음악’(Music in Korea)이냐, ‘한국의 음악’(Korean Music)이냐는 개념적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그것이 한국의 주체적이고 정체성 있는 음악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한국음악사에는 한국성(韓國性)이 담긴 모든 음악이 포괄되어야 한다. 가령 한국의 전통음악은 물론, 한국의 서양음악과 한국의 대중음악 등이 그러하다.
한국음악사에 대한 포괄적 역사서술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다루고자 하는 각 시대의 음악사료가 많이 남아 있어야 할 것, 둘째 한국음악사 연구의 학문적 연구업적이 충분히 축적되어야 할 것, 셋째 쓰는 이의 학문적 식견과 지식이 넓고 깊어야 할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술자가 마땅히 지녀야 할 학문성은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송방송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는 이미 탁월한 음악사가(音樂史家)로서 정평이 나 있고, 최근 그가 펴낸 '증보 한국음악통사'(增補 韓國音樂通史)는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개설서의 결정체(結晶體)가 아닐 수 없으리라.
'증보 한국음악통사'는 '한국음악통사'를 기초로 씌어졌다. 1984년에 출간된 '한국음악통사'가 20여 년 뒤에 증보판으로 다시 만들어진 것이다. 먼저 증보판은 이전에 비해 훨씬 두꺼울 뿐만 아니라, 판형과 활자를 대폭 키웠다. 642쪽의 '한국음악통사'가 증보판에서는 982쪽으로 늘어났고, 큼직한 판형과 활자크기로 한층 가독성(可讀性)을 높였다. 또한 본문 내용의 이해를 돕는 도판자료도 풍성한 편이다. 특히 각 장(章)의 말미에는 저자가 참고한 선행연구(단행본 및 논문) 목록을 꼼꼼하게 정리해 두고 있다. 그것은 저자의 정치(精緻)한 학문성을 뒷받침해 주는 사례의 하나이다.
기존의 '한국음악통사'와 '증보 한국음악통사'는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한국음악통사'의 주요한 차례는 다음과 같다.
제1장 향악의 형성과 발전시대
제2장 향악의 전성시대
제3장 당악․아악의 수용시대
제4장 아악의 정비시대
제5장 민속악의 새 양상시대
제6장 양악의 수용시대
제7장 민족음악의 모색시대
그리고 '증보 한국음악통사'의 차례도 이와 거의 비슷하다.
제1장 향악의 형성과 발전시대
제2장 향악의 전성시대
제3장 당악․아악의 수용시대
제4장 아악의 정비시대
제5장 근대로 전환기의 민간음악시대
제6장 서양음악의 수용시대
제7장 민족음악의 모색시대
차례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제5장 ‘민속악의 새 양상시대’가 ‘근대로 전환기의 민간음악시대’로, 제6장 ‘양악의 수용시대’가 ‘서양음악의 수용시대’로 각각 바뀌는 형식상의 변화가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상당부분 수정 및 보완이 이루어졌다. 즉 제1장 ‘향악의 형성과 발전시대’와 제5장 ‘근대로 전환기의 민간음악시대’가 그러하며, 특히 수정․보완이 집중된 부분은 제6장과 제7장이다.
제6장 ‘서양음악의 수용시대’에서는 ‘국악의 명맥’, ‘민속악의 전통’이 ‘대한제국 시기의 궁중음악과 민간음악’, ‘일제강점기 조선악의 전승양상’으로 훨씬 구체화되었고, ‘양악의 등장과 수용’이 ‘서양악의 수용과정과 찬송가’, ‘일제강점기 서양악의 전개양상’ 등으로 확대되었다.
또한 제7장 ‘민족음악의 모색시대’에서는 ‘국악(혹은 한국음악)의 개념’, ‘한국음악학의 등장’, ‘국악의 현황’ 등에 머무르던 것이 ‘현대 국악사의 전개양상’은 물론, ‘현대 한국양악사의 전개양상’과 ‘북한음악의 전개양상’ 등으로 더 한층 확대․심화되었다. 더욱이 한국 근․현대 서양음악사와 북한음악사를 아우르는 작업은 지금까지 관련분야의 연구성과가 적지 않았던 까닭이기도 하겠으나, 남북음악의 전개양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살핌으로써 마침내 “한겨레음악사가 되도록” 노력한 저자의 신념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증보 한국음악통사'의 출간은 한국음악사 분야에서 근래 보기 드문 수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보 한국음악통사'에 대해 고언(苦言) 드릴 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학계(學界)의 말석(末席)을 차지한, 실로 천학(淺學)에 비재(菲才)하기까지 한 평자(評者)이지만, 이에 몇 마디 거들어 볼까 한다.
첫째 한국 근․현대음악사에서 특히 눈부신 성장을 이룬 해방이후 대중음악 분야의 역사가 간과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중음악은 대중문화의 일부로서 과거와 현재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그 과정을 담고 있다. 더구나 이와 관련된 선행연구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경계 허물기와 장르통합이 가속화되는 작금의 문화현실을 감안할 때 대중음악의 역사도 마땅히 음악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둘째 중앙, 혹은 서울중심적 사관(史觀)으로 서술된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국 근․현대사의 고비마다 주요하게 기능했던 각 지역의 음악상황이 대체로 가볍게 다루어졌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가령 6․25 한국전쟁기와 부산, 80년대와 5․18 광주 등은 특정한 지역적 범주를 뛰어넘어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물줄기를 바꾼 분수령이었던 까닭이다. 더구나 본문 가운데 중앙지 ‘서울’을 제외한 지역을 빈번하게 ‘지방’(地方)이라 호명한다. 그것은 중심지 ‘서울’에 대한 그 외 지역의 주변적(혹은, 변방적)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이 경우 ‘지방’이 중앙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구도 아래 자기 규정을 위하여 설정된 타자(他者, other)라는 사실이 늘 간과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셋째 선행연구를 비판없이 수렴한 경우가 더러 있다는 점이다. 가령, 학교 창가(唱歌)와 관련해서 “음악적으로는 요나누끼 장음계 위주의 창가…”(643쪽 두 번째 문단 3째줄)라든지, “음계는 요나누끼 장음계가 90% 이상이며…”(643쪽 세 번째 문단 3째줄) 등으로 서술된다. 그래서 “일본창가의 영향력 아래 이루어진 양악교육은 신세대 학생들에게 차츰 일본식 서양악의 영향력에 얽매이도록 만들었다”(644쪽 두 번째 문단 5째줄)고 해석한다. 요나누끼 장음계는 서양식 7음계에 ‘파’와 ‘시’가 빠진 ‘도․레․미․솔․라’의 5음계를 말하는 것으로 요나누끼 단음계, 즉 ‘라․시․도․미․파’의 5음계와 대칭된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본 특유의 음악양식’으로 간주되는 요나누끼 장음계는 사실 제3세계의 민요선율에 즐겨 나타나는 음계로서, 일본식 음계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일본의 학교창가가 애초부터 이러한 양식도 아니었다. 또한 친일음악을 논하는 부분에서 창씨개명(創氏改名)이 곧 친일행위인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창씨개명한 양악인의 친일행각”(687쪽)이라는 소제목이 그러하고, “창씨개명과 친일음악활동에 대한 서술은…<중략>…민족음악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691쪽 세 번째 문단 3째줄)이라 말함으로써 창씨개명이 친일음악활동의 가장 대표적인 지표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창씨개명을 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친일을 한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창씨개명을 한 사람은 무조건 친일이고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은 친일이 아닌 것은 아니다.
넷째 오자(誤字) 및 띄어쓰기, 약물(約物) 등의 부수적인 문제가 소수 있다는 점이다. 먼저 다음과 같은 것들은 수정되어야 한다.
쪽수 |
오(誤) |
정(正) |
599 |
엘르트 |
엘리트 |
601 |
살펴본 |
살펴 본 |
680 |
음악이한 하오 |
음악이란 하(何)오 |
682 |
광복 후 신고송은 북쪽을 선택하였고, 홍난파는 남쪽을 택하는 것으로 서로의 논쟁은 마무리되었다. |
여기서 홍난파는 남쪽을 택할 수 없었다. 이미 그는 해방 전인 1941년에 작고했기 때문이다. |
685 |
조선통독부 |
조선총독부 |
688 |
이흥렬은 일본 동경음악학교에서 |
이흥렬은 일본 동양음악학교에서 |
691 |
開花期 |
開化期 |
702 703 743 |
박록주 |
박녹주 |
728 |
국민훈장 목단장 |
국민훈장 모란장 |
815 |
조선음악가협회 |
조선음악협회 |
829 |
김수현 |
금수현 |
860 |
모챠르트 |
모차르트 |
870 871 |
평균률 |
평균율 |
878 |
첫거름 |
첫걸음 |
한편 음악작품의 제목에 ‘「 」’와 같은 꺽쇠를 넣고, 필요한 경우 괄호 안에 한자를 넣어야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김기수는 1951년에 고향소를 창작하였고, 1952년에는 정백혼과 송광복 및 개천부를 발표하였으며, 1953년에는 하원춘과 회서양 및 파붕선을 창작하였다”(698쪽 첫 번째 문단 1째줄)고 기술된 부분이 있다. 물론 여기서 고향소․정백혼․송광복․개천부․하원춘․회서양․파붕선 등은 창작품의 제목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칫 오독(誤讀)될 위험이 없지 않다. ‘고향소’를 ‘고향의 황소’로, ‘정백혼’․‘송광복’을 ‘정백혼과 송광복’으로 잘못 읽을 수 있음이 그것이다. 따라서 작품제목은 「고향소」․「정백혼」과 같이 꺽쇠를 넣어주는 것이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한자어일 경우 제목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향소」(顧鄕韶)․「정백혼」(精白魂)처럼 제목 뒤에 한자를 넣어주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증보 한국음악통사'는 한국음악사 개설서로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학계의 축적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원로학자의 손에 의해 서술된 학문적 총합(總合)이기 때문이다. 한국음악의 역사적 전개과정에 관심이 있는 모든 지성인들에게 기꺼이 일독(一讀)을 권하는 바이다.
'음악과 민족' 제35호(부산: 민족음악학회,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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