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손태룡, '每日新聞音樂記事索引: 1946-1999'(경산: 영남대출판부, 2002)
김 창 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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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음악문화에 관심이 증폭된 것은 90년대 접어들면서부터였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중앙집권적 문화가 향후 지역분권적 문화로 재편되어야 함을 예고하는 전주곡(前奏曲)이었던 동시에, 오랫동안 서울변방으로 떠밀려 있던 지역문화의 복권(復權)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이러한 지역분권적 문화기류는 95년부터 시행된 지방자치제와 맞물리면서 더욱 가속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지자제(地自制) 실시는 그동안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돼 왔던 ‘지역문화의 활성화’를 마침내 지방정부의 몫으로 넘겼을 뿐 아니라, 각 지자체(地自體)들로 하여금 ‘문화예술이 곧 지역발전의 자원’이라는 인식전환을 가져오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같은 시대조류에 따라 지역음악연구의 움직임도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부산의 경우 96년에 발간된 '음악과 민족' 제12호에서 대구지역 음악학자였던 김진균(金晉均)을 탐색했고, 97년도 제13호에서는 21세기 부산지역 대학음악교육의 전망 및 96년도 한햇동안의 부산음악계를 총정리했으며, 제14호에서는 부산지역 작곡가 김국진(金國鎭)의 삶과 음악세계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 98년도 제16호에는 광복 이후부터 오늘날까지의 부산음악의 흐름을 정리한 “20세기 부산음악사”라는 제목의 특집물을 게재했다.
이러한 지역음악연구는, 마침내 각 지역음악의 독자성과 다양성을 지향하는 ‘지역음악학’(地域音樂學 regional musicology)이라는 독립된 학적(學的) 체계로 정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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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대구에서도 몇몇 주요한 지역음악 연구서들이 잇따라 출간되었는데, 대부분 음악학자 손태룡(孫泰龍)에 의한 것이었다. '大邱洋樂史硏究'(대구: 도서출판 대일, 1996)를 비롯한 '嶺南音樂史硏究'(서울: 민속원, 1999), '대구음악사'(대구: 대구광역시남구대덕문화원, 2000) 등이 그것이다.
대구지역 서양음악활동의 사적(史的) 흐름을 살핀 '大邱洋樂史硏究'는 대구의 서양음악통사를 시작으로 피아노사․악대사․관악사․성악사․현악사․창작사 등 각 장르별 활동상황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그것의 기초가 된 매일신문의 기사목록을 부록으로 각각 첨가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박태원․박태준․현제명․권태호․하대응․이점희․김진균 등의 음악활동을 아울러 고찰함으로써 그들이 한국양악가이기에 앞서 먼저 대구양악가였음을 새삼 밝혀주고 있다.
대구지역에서 영남지역으로 논의의 폭을 확대시킨 '嶺南音樂史硏究'는 영남의 음악 및 음악가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영남지역 전통음악의 형성과 그 전개과정을 진한․변한․가야․통일신라의 고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동시에, 근대시기 대구와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지역 서양음악의 유입과 그 전개과정을 탐색해 낸다. 또한 영남의 가객 한유신(韓維信)과 판소리 명창 박기홍․이선유․유성준․박지홍․이진영, 그리고 여류명창 이화중선․박녹주․이소향․오비취․임소향․박귀희 등의 음악활동도 살폈는데, 특히 여류명창의 활동상은 일제시대 유성기음반 자료를 토대로 현장연구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당대의 자료인 '海東歌謠朴氏本'의 '永言選' 및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의 관련문헌을 바탕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편 대구의 양악활동을 역사적으로 논구(論究)한 '대구음악사'는 대구음악의 역사를 모두 5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즉 서양음악의 유입과 수용기(피아노의 유입과 관악기의 등장기: 1827-1919), 서양음악의 자주적 전개기(제1세대 음악가의 활동과 동요의 창작기: 1920-1945), 서양음악의 창조적 발전기(악대의 활동과 서울음악의 수용기: 1946-1963), 서양음악의 대규모적 활동기(대구시향의 출범과 음협대구지부의 결성기: 1964-1980), 서양음악의 독창적 모색기(전문음악가와 음악단체들의 활동기: 1981-1990) 등이 그러하다.
이것은 이전에 연구된 '大邱洋樂史硏究'와 '嶺南音樂史硏究'의 양악분야를 독립시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노작(勞作)으로서 양악 수용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구지역 양악의 내재적 발전사 연구의 결정(結晶)임은 물론, 타 지역 음악사 서술의 전범(典範)이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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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룡의 이같은 음악사 연구는 무엇보다 방대한 기초자료의 수집과 충실한 정리를 바탕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일찍이 1955년 8월 1일부터 1964년 12월 31일까지 지역신문인 대구매일신보를 기초로 한 '대구매일신문 음악기사집'(대구: 도서출판 대일, 1990)을 비롯, 1945년 11월 1일부터 1957년 4월 30일까지 영남일보를 바탕한 '영남일보 음악기사집'(대구: 도서출판 대일, 1997)을 각각 펴낸 바 있다. 나아가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어용지(御用紙)였던 매일신보를 토대로 '매일신보 음악기사 총색인'(서울: 민속원, 2001)을 출간함으로써 한국 근대음악사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같은 음악기사의 색인작업에 천착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것이 음악사 서술을 위한 기초로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그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음악기사 색인을 시도한 이유는 대구음악사의 기초연구라는 본인의 생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대구음악사의 기초연구가 한국음악사의 체계적 발전을 위하여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본인은 한국음악학계에서 논의된 한국음악학의 연구기반 조성을 위한 기초자료의 정리작업이 시급히 필요함과 동시에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상기하면서, 음악사료의 체계적 정리작업이 한국음악사학의 가장 중요한 기초작업 중의 하나인 점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실제 음악사 연구에서 기초자료의 수집 및 정리는 불가결(不可缺)한 것이다. 역사서술은 비사실(非事實)을 가공한 소설과는 달리, 그 근거가 분명히 적시(摘示)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당대의 기록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음악자료에 대한 색인작업은 연구의 효율성(效率性)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색인작업은 적어도 음악학계 내에서는 그다지 보편화되지 않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이같은 작업이 연구자의 오랜 시간과 부단한 노력을 절대적으로 요청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작업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지만, 누구도 나서기 꺼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때 선구자적(先驅者的) 자세로, 꾸준히 이 작업에 몰두해 온 편자(編者)에게 필자는 평자(評者)이기 이전에 먼저 한 음악학자로서 새삼 경의(敬意)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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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每日新聞音樂記事索引'은 우선 그 방대한 분량이 놀랍다. 총 1,109쪽에 이르는 자료집은 마치 음악대사전을 방불케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료집은 무려 반세기 동안 대구지역에서 행해졌던 음악적 사실을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편자는 이 색인작업을 위해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대구시립도서관, 매일신문사 자료실을 두루 섭렵했고, 이 작업을 일단락짓는데 무려 13년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때때로 자료채집의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당시 매일신문사 조사부장(이재화)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마이크로필름을 통한 자료공개의 거절로 인하여 2년간이나 작업이 늦어졌다. 당시 필자는 '大邱市史'의 음악부문과 자료편을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구직할시 문화예술과에서 발부한 정식 요청공문을 제출하였으나 조사부장이 매일신문사가 대구시에 소속되어 있는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본인의 요청을 아주 냉정하게 받아 주지 않았다."
색인작업도 작업이지만, 그것을 행하기 위한 자료채집의 어려움은 연구자의 의욕을 반감시키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 어려움이 사회의 보편적인 통념을 벗어난데서 기인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자료채집의 어려움은 과거 '大邱洋樂史硏究'를 집필할 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구지역의 음악과 관련되는 자료가 있다면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이다. 어떤 경우에는 음악학자가 아닌 서지학자나 취재기자가 되기도 하였으며, 또한 향토사가와 역사학자 및 고고학자가 되기도 하였다. 이는 손과 발, 온몸으로 야산을 일구어 옥토로 개간하는 것과 비교될 수 있겠다."
때문에, 매쪽마다 그리고 행간(行間)마다 그의 짙은 고독감과 고단함이 켜켜히 묻어난다. 그렇지만 편자는, 마침내 이 작업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이로써 그는 지역음악사 연구를 위한 또 하나의 디딤돌을 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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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每日新聞音樂記事索引'은 '매일신문'(1946-1999) 음악기사를 토대로 행해졌다. 따라서 여기에는 대구지역에서 행해졌던 다양한 음악적 사실(事實)이 폭넓게 아우르져 있다. 색인집을 대략적으로나마 일별(一瞥)해도 그러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가령 ‘가’항의 ‘가곡’에서부터 ‘하’항의 ‘하계지휘자 워커숍’에 이르기까지의 예술음악 쪽은 물론, ‘가야금’과 같은 전통음악 쪽과 ‘가요’처럼 대중음악 관련색인이 두루 포괄되어 있다. 이것은 서양식 예술음악만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라는 ‘음악민주주의’의 이념과 맥락을 같이 한다.
또한 여기에는 음악 전 분야의 단체명․인명․장소명․학교명․서명(書名)․악기명에서부터 심지어 음악회명과 악곡명까지 색인화하고 있다. 대구시립교향악단․김진균․문예회관․계명대학․국악통론․바이올린 등이 그러하다. 그것은 이 색인집이 ‘저인망식’(底引網式)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의 증좌(證左)이기도 하려니와 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태도, 이를테면 정치성(精緻性)과 치열성(熾熱性)을 한 눈에 보여준 일례(一例)이기도 하다.
한편 이 색인집은 주항목과 부항목, 나아가 부부항목까지를 다루고 있다. 특히 부부항목까지의 색인은 작업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보다 구체적인 음악적 사실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예컨대 무작위로 뽑은 다음과 같은 기사(611쪽)를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엄정행/테너
93사랑나눔송년음악회(대구시여성단체협의회) 93.12.7⑮
독창집(디스크․지구레코드사) 78.12.3⑤
대구시향축하연주회(문예회관개관기념) 91.5.17⑲, 5.21⑲
여기서 테너 엄정행(주항목)이 93년도 사랑나눔송년음악회(부항목)에 출연했는데, 그 음악회는 대구시여성단체협의회(부부항목) 주최로 열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리고 테너 엄정행(주항목)이 독창음반(부항목)을 냈는데, 지구레코드사(부부항목)에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 테너 엄정행(주항목)이 대구시향의 축하연주회(부항목)에 출연했는데, 그 연주회는 문예회관의 개관기념(부부항목)으로 열렸음을 각각 일러준다. 아울러 편자는 부항목인 93사랑나눔송년음악회(93쪽), 부부항목인 대구시여성단체협의회(282쪽)․디스크(340쪽)․지구레코드사(861쪽)․문예회관개관기념(377쪽) 등을 다시 주항목으로 내세워 여러 다양한 정보들을 거미줄처럼 정교하게 엮어주는 동시에, 정보의 출처를 연월일면(年月日面)의 순으로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평자는 이 색인집이 앞으로 대구음악사 연구에 있어, 참고하지 않으면 안될 소중한 지침서가 될 것임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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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완벽에 가까운 이 자료집의 편자에게 굳이 평자가 시비(是非)를 걸자면, 다음 두 가지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주항목에 제시된 대상이 동일할 경우 표기에 통일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가령 ‘모차르트’(370쪽)는 ‘모짜르트’(369쪽)와 ‘모짤트’(370쪽), ‘슈베르트’(544쪽)는 ‘슈벨트’(544쪽), ‘바이올린’(418쪽)은 ‘바이얼린’(417쪽), ‘플루트’(941쪽)는 ‘플롯’(940쪽)과 ‘플룻’(941쪽) 등과 같이 각각 따로 주항목을 만들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동일한 대상을 단지 표기만 달리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이럴 경우 오히려 검색작업을 더디게 하거나, 자칫 혼란을 초래할 위험도 없지 않다. 따라서 ‘모짜르트 ⇨ 모차르트(369쪽)’, 또는 ‘바이얼린 ⇨ 바이올린’(417쪽), 또는 ‘플롯 ⇨ 플루트’(940쪽) 등과 같이 통일된 개념을 중심으로 지시표를 해 주는 한편, 통일된 개념을 주항목으로 내세워 이와 관련된 모든 정보들을 한꺼번에 모아주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둘째, 비록 부분적이기는 하나 몇몇 오자(誤字)가 눈에 띄었는데, 이는 학술정보의 기초인 정확성(正確性)과 관련, 이후 재판(再版)에서 수정을 필요로 한다. 평자가 겨우 찾아낸 ‘옥의 티’로는 주항목의 ‘민요가사집}’(민요가사집․409쪽), ‘백진헌’(백진현․462쪽), ‘변성업’(변성엽․467쪽), ‘엄정해’(엄정행․611쪽), ‘일본복광음악가협의회’(일본복강음악가협의회․777쪽), ‘한국와YMCA협회’(한국YMCA협회․966쪽)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현미경(顯微鏡)을 통해 미시적(微視的)으로 접근한 손태룡의 '每日新聞音樂記事索引'은, 따라서 대구음악사 연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초일 뿐 아니라, 나아가 타 지역 음악사 연구에도 훌륭한 방법론적 기초로서 작용하게 될 것임을 평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한국음악사학보' 제28집(서울: 한국음악사학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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