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부산』 2014년 8월호(통권 제110호)
피아노는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악기다. 피아노, 혹은 피아니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샤인」(1996), 「피아니스트」(2002),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 「그랜드 피아노」(2013) 등이 그렇다. 특히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나찌시기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 체험했던 생존을 위한 투쟁, 즉 추위와 배고픔, 고독과 공포감을 구체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리얼리티를 획득하고 있다.
쳄발로의 한계, 피아노 탄생으로 극복해
피아노는 바로크 시대였던 1709년에 만들어졌다. 이탈리아의 악기제작자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stofori 1655-1732)에 의해서였다. 그는 왜 피아노를 만들었을까? 이전에 건반악기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바로크시대만 해도 하프시코드(영 harpsichord), 클라브생(프 clavecin)이라고도 불리던 쳄발로(cembalo)가 건반악기의 대표주자였다. 쳄발로는 대단히 맑고 순수한 음향을 자랑한다. 마치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처럼 청명하며, 그 소리는 우리의 귀를 열고 마음이 뜨이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쳄발로는 악기로서의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었다. 곧 셈여림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날이 거듭될수록 음악수용자들은 차츰 귀명창이 되어 갔고, 그들의 청각적 욕망은 새로운 악기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탄생된 것이 ‘그라베쳄발로 콜 피아노 에 포르테’(gravecembalo col piano e forte)라는 다소 긴 이름의 악기였다. ‘피아노(여리게)와 포르테(세게)를 연주하는 장중한 쳄발로’ 쯤의 의미겠다.
피아노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공명체(共鳴體)인 본체, 본체를 지탱하는 다리, 그리고 셈여림을 조절하는 페달이 그것이다. 본체에는 금속제 현(피아노 선), 해머, 울림판, 댐퍼(소음장치) 등이 포함되며, 이들의 유기적인 기능을 위해 크고 작은 부품들이 정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요컨대 본체는 우리 인체의 내장기관에 해당될 수 있겠다.
가령 누군가 피아노 건반을 누르거나 친다고 하자. 그 힘이 해머에 전달되고, 해머는 현(絃)을 자극한다. 해머는 액션장치(건반이나 페달의 동작을 발음체에 전달해 주는 장치)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것은 해머가 현을 내리친 뒤에 다른 건반을 칠 수 있도록 재빨리 해머를 원위치시켜 주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윽고 현의 울림은 울림판을 거쳐 음량이 확대되고, 울림판 주위의 공기까지 진동시켜 소리를 멀리까지 퍼져 나가게 하는 것이다.
쇼팽·리스트, 피아노 표현 가능성 극대화시켜
피아노는 바로크시대에 만들어졌지만, 그 다음 시대인 고전과 낭만시대를 거치면서 마침내 ‘악기의 왕’으로 등극한다. 기라성같은 작곡가들, 예컨대 모차르트·베토벤·쇼팽·리스트 등에 의해 피아노의 새로운 테크닉이 개발되었고, 신작 피아노곡은 물론, 오케스트라곡의 피아노용 편곡도 폭넓게 이루어졌다. 나아가 피아노 악보출판, 피아노 판매점, 피아노 조율의 수요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더욱이 낭만시대에는 피아노를 정점으로 하는 소규모 살롱문화가 눈에 띄게 확산되기도 했다. 쇼팽은 살롱콘서트에서 연습곡·춤곡·녹턴·즉흥곡·발라드와 같은 이른바 성격소품(character piece)을 즐겨 연주했고 완벽한 텃치, 피아니스틱한 효과를 창출해 냄으로써 피아노의 표현 가능성을 더 한층 극대화시켰다.
쇼팽과 쌍벽을 이루었던 리스트는 또 어떠했던가! 초대형 무대에서 청중을 압도했던 그는 피아니스트로 하여금 초인적인 힘과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했다. 그는 피아노로써 화려하고 현란한 오케스트라적 화현을 재현해 냈고, 뭇 여성들은 그의 초인적인 연주에 열광하며 몸을 떨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기적인 피아니스트도 적지 않다. 안톤 루빈슈타인,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칼 리히터, 마우리치오 폴리니 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특히 러시아의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989)는 낭만주의 전통을 바탕으로, 라흐마니노프와 리스트의 눈부신 기교와 관현악적 피아니즘을 과시했다. 그런 까닭에,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여주인공 지수(엄정화 분)가 그를 그토록 선망해 하지 않았던가! 비록 동네 피아노학원 선생으로 남게 됐지만.
피아노의 장점과 강점
우리 동네에도 피아노학원이 여럿 있다. 거기서는 여전히 바이엘이나 체르니, 하농이나 부르크뮐러를 교재로 쓴다. 악곡연습을 위한 바이엘과 체르니, 부르크뮐러와는 달리, 하농은 손가락 연마를 위한 연습교재다. 독일 제약회사 이름과 똑같은 바이엘(Bayer)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페르디난드 바이어(Ferdinand Beyer)가 만든 것이고, 비엔나 출신의 체르니는 베토벤의 제자로 리스트와 같은 걸출한 피아니스트를 길러냈다. 그는 1천 여의 피아노곡을 쏟아냈지만, 알려진 작품은 별로 없다. 작곡가로서보다 오히려 피아노 교사로서의 명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피아노의 매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오케스트라의 정규 편성에 포함되지 않은, 독립적인 독주악기로서 기능한다는 점이겠다. 어디 그 뿐이랴! 교주악기(交奏樂器)로서 오케스트라와 대등한 지위를 차지하며, 독주는 물론 독창과 중창, 합창의 반주 기능도 혼자서 톡톡히 해내는 악기가 아니던가. 나아가 피아노는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지향하는 실내앙상블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니까 피아노는 독주부터 중주·합주·반주에 이르기까지 못하는 것이 없는 악기다. 더구나 풍부한 음향, 셈여림의 자유로운 변화, 폭넓은 음역, 맑고 탄력적인 음색, 다양한 표현력은 가히 ‘악기의 왕’이 지닌 마력(魔力)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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