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金宗三 1921-1984)
내가 재벌이라면
메마른
양로원 뜰마다
고아원 뜰마다 푸르게 하리니
참담한 나날을 사는 그 사람들을
눈물 지우는 어린 것들을
이끌어 주리니
슬기로움을 안겨 주리니
기쁨 주리니.
- 權命玉 엮음, 『金宗三 全集』(나남출판, 2005), 228쪽.
【解說】김종삼은 시인일 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 관심이 많았던 낭만적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언제나 베레모를 쓰고 파이프를 물었다. 한평생 직장다운 직장을 가져보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시에도 그다지 애착을 느끼지 않았다. 그에게 시란 "장난 삼아 그적거리"는 어떤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그는 술과 음악에는 전심전력으로 몰입했다. 특히 음악이 그랬다. 그는 바흐와 모차르트, 드뷔시와 모리스 라벨, 세자르 프랑크와 스티븐 포스터와 그들의 음악을 사랑했다. 덕지덕지한 세상에서 음악은 "종교적이라 할 만한 정화력(淨化力)"을 갖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종삼은 궁극적으로 평화주의적 휴머니스트였다. 참혹한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그는 "하루를 살아도 온 세상이 평화롭게", "영원토록 평화롭게" 되기를 소망했다. 나아가 그는 자신의 「내가 재벌이라면」이라는 시에서 소박한 휴머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김종삼은 만약 자신이 재벌이 된다 하더라도 가난한 이들에게 뭉텅이 돈을 쥐어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의 소외된 곳(양로원과 고아원의 뜰)을 푸르게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참담한 나날을 살아가는 그곳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슬기로움과 기쁨을 덤뿍 안겨주고자 했다.
바람이 차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은 겨울나기도 두려울 게다. 시인의 사랑노래가 더욱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2018.01.20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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