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규(金光圭 1941- )
하수관 교체 공사로 온 동네가 시끄럽다
공사 주역은 대형 포클레인
브레이커로 아스팔트 길바닥에 구멍을
뚫고 삭은 하수관을 쇠바가지로 걷어내어
덤프트럭에 옮겨 싣는다
새 하수관을 그 자리에 배열하고
수평을 맞춘 다음 그 위에
흙을 덮고 쇠바가지로 쿵쿵
눌러 다진다 이제
아스팔트 포장만 하면 끝이다
포클레인 혼자서 온갖 힘든 일
도맡아 하고 곁에서 인부 다섯이
삽과 비를 들고 시중을 든다
포클레인이 하루에 50만 원을 벌고
인부들은 일당 4, 5만 원을 받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자재 구입비와 쓰레기 수거비는 별도 계산하고
감리 비용은 관례에 따른다
- 김광규, 「굴삭기의 힘」, 『하루 또 하루』(문학과지성사, 2011), 50쪽.
【解說】 농경사회가 산업사회로, 산업사회가 다시 정보화사회로 재편되었다. 이제 우리는 4차산업사회의 문턱에 성큼 다가섰다. 바야흐로 4차산업혁명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혁명의 대표주자는 단연 로봇과 인공지능과 드론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든 발명품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다. 이들은 여지껏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지 못했던, 실로 경이로운 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4차산업혁명이 과연 인간에게 이롭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인간에게 자유와 평등,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정말 믿어도 되는 것일까? 가공할 만한 위력의 기계에게 침탈 당한 인간이 오히려 기계로부터 지배 당하는 것은 아닐까? 포클레인의 시중을 드는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인공지능 로봇의 시중을 드는 알바생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2018.01.21 들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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