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記念)'이란 기억해서 새긴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뜻이 깊거나 가치로운 일을 마음속에 되새긴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다. 가까운 주위에도 기념할 만한 일이 많고, 이를 통해 그 의미가 새삼 부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생일·입학·졸업·결혼 등이 있고, 사회적으로는 4·3, 4·16, 4·19, 5·18, 6·25, 8·15 등이 기념될 수 있으리라.
아닌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해마다 서양 음악가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2010년 말러 탄생 150주년, 2012년 드뷔시 탄생 150주년, 2013년 바그너와 베르디 탄생 200주년, 2015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 음악회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렸고, 올해도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 푸치니 탄생 160주년, 구노 탄생 200주년 기념 음악회가 벌써 열린 바 있다.
서양 음악가 기념 줄 잇지만
자국인 한국 음악가엔 '인색'
부산 출신의 금수현 작곡가
기념공원 조성 움직임 주목
그렇다고 기념 음악회가 비단 음악가의 '탄생'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거' 기념 음악회도 곧잘 열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브람스 서거 120주년, 텔레만 서거 25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리더니, 올해는 드뷔시 서거 100주년, 로시니 서거 150주년 기념 음악회가 이미 열렸거나 열리고 있다. 탄생이든, 서거든 역사상 굵직한 위업을 남긴 인물과 그들의 예술을 기억하고 경의를 표하는 것은 자못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들 서양 음악가와는 달리, 정작 자국인 한국 음악가들에 대한 기념은 지나치게 인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령, 지난해 윤이상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 음악회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과는 달리, 그 밖의 기념 음악회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3월 19일은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 홍난파 선생 탄생 120주년을 맞는 날이었으나, 매년 화성시 남양군 활초리에서 열려 온 생가(生家) 추모음악회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한국이 낳았지만 '세계적'이지 않아서일까?
사실, 근대 시기 홍난파 선생의 음악사적 공적은 남다르다.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음악평론가·음악잡지 발행인·관현악단 지휘자 등 그의 존재를 상징하는 수사(修辭)만 봐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조선동요백곡집>(1931)의 '퐁당퐁당' '햇빛은 쨍쨍' '고향의 봄'과 같은 동요, <조선가요작곡집>(1933)의 '봄처녀' '옛동산에 올라' '고향생각' '금강에 살으리랏다'와 같은 가곡의 세례를 받지 않고 자란 한국인이 어디 있을까.
2019년에도 탄생을 기념할 만한 음악가들이 없지 않다. 이흥렬·이재호·금수현 선생 등이 바로 그들이다. 탄생 110주년을 맞는 이흥렬(1909~1981) 선생은 일본 도요(東洋)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가곡 '바위고개' '어머니 마음' '꽃구름 속에', 동요 '섬집아기' 등의 노래를 썼다.
탄생 100주년을 맞는 이재호(1919~1960) 선생도 '한국 가요계의 슈베르트'라 불릴 정도로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산장의 여인' '경상도 아가씨' '단장의 미아리 고개' '나그네 설움' '불효자는 웁니다' 등이 그의 손길을 거쳐 나왔다. 요컨대 그들은 고통과 질곡의 세월을 견뎌온 한국인의 마음을 주옥 같은 선율로 달래준 예술가들이다.
내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게 되는 '그네' 작곡자 금수현(1919~1992) 선생도 빼놓을 수 없는 음악가다. 강서구 대저1동 출신의 선생은 작곡가·지휘자·음악교육가·음악행정가·극장장·잡지 발행인 등 다양한 분야의 남다른 자취를 남긴 바 있으며, 특히 초창기 척박한 부산 문화계에서 음악교육연구회를 설립하고, 전국 최초로 음악콩쿠르를 개최하는가 하면, '월간음악'을 창간하여 무려 22년 동안 유망한 음악가들을 국내외에 발굴·소개함으로써 대한민국 음악문화에 중차대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최근 강서구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금수현 기념공원'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드높다. 부산 음악계의 기념 문화도 한층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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