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식구는, 우리 동네 사람들은 어느 순간 실향민이 되었지. 부산시 강서구 대저2동 4757-2번지 25통 1반. 이른바 에코델타시티사업 탓에 다들 정든 고향을 버릴 수밖에 없었지. 방앗간 아저씨네는 하단으로, 귀임 엄마네는 명지로… 모두들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지.
머잖아 우리 동네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우리가 살고 놀고 농사 지었던 곳은 한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겠지. 어쩌면 우리에게 삼포(森浦)는 애당초 없었는지도 모르지. 동네는 휑하니 비었고, 논이고 밭이고 잡풀들만 우거져 있었지. 오직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름다운 날들. 올 겨울, 폐허에 폐허에도 눈이 내릴까? 2019. 10. 11 들풀처럼
눈이 온 뒤에도 또 내린다
생각하고 난 뒤에도 또 내린다
응아 하고 운 뒤에도 또 내릴까
한꺼번에 생각하고 또 내린다
한 줄 건너 두 줄 건너 또 내릴까
폐허에 폐허에 눈이 내릴까
- 김수영 「눈」(1966)
포토 바이 들풀처럼. 본가 본채. 모든 가정 대소사를 도모했던 곳. 큰방에 드러누워 '전설의 고향', '수사반장', '웃으면 복이 와요', 그리고 김일·천규덕·여건부의 프로레슬링을 보던 일이 실로 아득하다.
포토 바이 들풀처럼. 본가 아랫채. 본디 창고와 소마굿간, 아랫방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신혼 초 4~5년 정도 살았던 곳. 아버지·엄마가 방 만든다고 몇날 며칠 낮밤을 고생했지.
포토 바이 들풀처럼. 아랫채 안방. 티비와 전화기, 장롱이 놓여 있던 곳. 첫녀 다슬이를 무릎팍에 올려두고 거의 매일밤 젊은 내외가 소줏잔을 기울였지.
포토 바이 들풀처럼. 말하자면 응접실. 싱크대와 간단한 주방도구가 있던 곳. 왼쪽에 문 열린 곳은 화장실. 똥 누며 담배 피던 곳. 꽁초는 창밖의 밭뙈기에 냉큼 던졌지. 응접실을 찾던 손님으로는 상근이 내외, 병환이 내외, 진복이 등이었지.
포토 바이 들풀처럼. 내 서재. 책상과 책장, 그리고 컴퓨터가 있던 곳. 참 피아노도 놓여 있었지. 총각시절, 이 방에 불이 들어와 있으면, 진복이란 놈이 퇴근하며 맥주와 안주를 한 가득 사왔지. 그리고 냠냠 먹었지.
포토 바이 들풀처럼. 서재에서 바라 본 서고. 갖가지 책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었지.
포토 바이 들풀처럼. 바깥마당에서 본 아랫채. 곧 무너질 듯 하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