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금)은 어버이날. 명지 어버이 집에서 어버이와 어버이의 아들들과 딸, 어버이의 며느리들과 사위, 어버이의 손자와 손녀들이 몽땅 한데 모였다. 어버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올해 아부지는 8학년 3반, 엄마는 8학년 2반. 그러던 가운데 아들들이 벌써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겼다. 바야흐로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는 중이다. 2020. 5. 10 들풀처럼
아버지를 위한 獻辭
인생에는 다섯 가지 복이 있다고 합니다. 흔히 오복(五福)이라 하지요. 오래토록 사는 것, 부유하고 풍족하게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남에게 덕을 베풀며 사는 것, 그리고 고통 없이 죽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누구나 이 모두를 갖기 원하지만, 비록 두어 개만 가져도 실로 복 있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 스물 네 살 짜리 총각이 스물 세 살짜리 처녀를 만나 혼사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슬하에 4남매를 줄줄이 낳았습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었고, 바야흐로 지천명(知天命)에 이른지 오래입니다. 이들이 지금껏 배 곯지 않고, 크게 아프지 않고 살아온 것은 벌써 몇 개의 복을 갖고 세상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평생 어머니와 농사를 지으며 살아 오셨습니다. 지게를 지고, 리어카를 끌고, 경운기와 트랙터를 몰면서 훌쩍 세상을 건너 오셨습니다. 매일같이 들판의 흙바람을 맞으면서 애지중지 키운 4남매를 대학까지 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소낙비가 쏟아지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하굣길, 우산을 든 아버지가 빗줄기를 뚫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를 데리러 오셨을 때 우리는 얼마나 뿌듯했겠습니까? 장마로 물이 불어나 아버지에게 업혀 학교 갈 때 그 너른 등은 얼마나 따뜻했고, 우리는 또한 얼마나 당당했겠습니까?
어느 한겨울 밤에는 아버지가 고열로 신음하던 아이를 업고 수십 리를 내달리기도 했습니다. 겨우 도착한 시내 한복판의 소아과. 의사로부터 "아이를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 두다니, 바보 같이!"라며 면박을 당하고도 아버지는 줄곧 병실을 지켰습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튿날, 아버지는 병원비를 대느라 아침도 거르셨습니다. 허기진 배를 달래며, 아이를 업은 아버지는 다시 수십 리 시골길을 허위허위 걸어서 돌아오셔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버지의 팔순을 맞았습니다. 해 뜨면 들녘에 나가 벼농사며, 부추농사, 시금치 농사에 세월 가는 줄 모르던 사이, 어느새 인생에 황혼이 깃든 것입니다.
아버지, 우리 아버지!
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누가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하시고, 백 세에 저 세상에서 누가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말하세요. 꼭, 꼭 그렇게 말해야 돼요.
※ 아부지의 傘壽宴에서(2017.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