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이면 수첩에 적어두었던 여배우 이름을 읽어보면서 예전에 보았던 영화장면을 회상하는 버릇이 있었다. 지금도 때로는 미술관 안내서와 음악회 프로그램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지도를 펴놓고 여행하던 곳을 찾아서 본다. 물론 묶어두었던 편지들을 읽어도 보고 책갈피에 끼워둔 사진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피천득 선생의 수필 가운데 일부다. 長壽, 「수필」(범우사, 2005), 127쪽.
나는 비 오지 않는 날에도 가끔씩은 앨범을 본다. 내 앨범에 부재했던 그때 그 시절의 몇몇 편린을 최근 발굴했다. 나름대로 순수하고 선도(鮮度) 높은 시절의 모습이다. 다시금 돌아갈 수 없는 그때. 그래서 그리운 거다. 먼훗날, 지나온 시간을 어찌 기억할 것인가? 기억할 수 없으므로 기록하는 거다. 2020. 5. 10 들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