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릎팍에 딸이 셋 있다. 2000년 2월에 첫녀 다슬, 2002년 4월에 둘째녀 다봄, 2005년 7월에 삼녀 다여름이 세상의 빛을 보았다. 당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누이나 낳아 오손도손 잘 살아보려 했다.
첫놈이 나오면 옹골차야 한다는 의미에서 ‘다옹’이라 하고, 둘째녀가 나오면 한결같이 슬기로워야 한다는 뜻에서 ‘다슬’이라 이름하려 했다.
그러나 세상이 어찌 제 마음대로 되던가? 첫녀가 나오는 바람에 부득이 ‘다슬’이라 이름했다. 이후 잇따라 지지배들이 나오는 탓에 이름도 새마음 새뜻으로 다시 짓기로 했다.
둘째녀는 '다봄'이다. 봄에 낳았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실은 '다 본다'의 명사형으로 여기, 저기, 거기를 두루 살필 줄 아는 통찰력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라는 애비의 속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따봉'(Tá bom)이라 부르는데, 포르투갈 말로 '아주 좋다'는 뜻이다.
삼녀는 ‘탱자’라 불리는 막내 여식이다. 하는 짓거리마다 '탱자탱자' 한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녀의 본명은 '다여름'이다. 여름에 태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기실 '사방천지 모두가 다 열매'라는 뜻으로 풍요로운 삶이기를 바라는 애비의 심오한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여름'은 '열매'라는 옛말에서 따 왔다. 바로 "곶 됴코 여름 하나니"(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풍성하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제 다 열었으므로, 더 이상 열매 맺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끝순이', 혹은 '말자'(末子)로써 마침내 판을 접겠다는 내외의 고뇌에 찬 결단이 녹아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벌써 내 나이 쉰을 훌쩍 넘겼다. 앞으로 기억력이 쇠퇴할 수밖에 없다. 기억하지 못할 내일을 위해 기록으로 남겨 둔다. 2020. 9. 12 들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