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라 트라비아타'를 보면서

浩溪 金昌旭 2023. 1. 4. 01:57

'예술부산' 2023년 1월호(통권 제211호)

 

다시 오페라하우스를 생각한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면서

 

연말연시는 언제나 다사다난하다. 한 해의 끝자락, 때때로 밤거리에 성탄 트리가 불을 밝히고, 이따금 구세군의 종소리도 들려오지만, 거리마다 울려 왔던 크리스마스 캐롤송은 어느새 멎은지 오래다.

 

불이 그리운 계절, 거리의 음악도 사라진 우리 시대,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차고 어둡기만 하다. 겨울 속의 봄, 그나마 따뜻한 음악에 마음을 녹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웠다고 해야 할까?

 

지난 12월 9~11일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가 사흘간에 걸쳐 무대에 올려졌다.

 

19세기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G. Verdi 1813-1901)의 명작이자 세계의 영원한 고전이다. 더욱이 이 작품은 국내 최초로 소개된 서양 오페라인 동시에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그래서 가장 즐겨 찾는 오페라이기도 하다.

 

1948년 조선오페라협회가 서울 시공관(市公館)에서 첫 공연을 가진 「라 트라비아타」는 청춘남녀인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순수하지만 비극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비올레타 발레리(파리의 고급 매춘부, 소프라노), 알프레도 제르몽(시골 출신의 부르주아 청년, 테너), 조르주 제르몽(알프레도의 아버지, 바리톤) 등이다.

 

주역으로 무대에 오른 솔리스트로는 왕기헌·정혜리·박현진(비올레타), 양승엽·장지현·김준현(알프레도), 안세범·유용준·강경원(제르몽) 등이었고, 이들은 부산 성악계의 중추로서 지역 오페라문화 활성화에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공연 둘째날인 12월 10일 무대에는 정혜리(비올레타)·장지현(알프레도)·유용준(제르몽)을 비롯해서 한우인(가스톤)·정수정(플로라)·이기백(마르케제)·김경한(바로네)·신명준(도토레)·도현미(안니나)가 각각 캐스팅됐다.

 

비올레타 정혜리는 프리마 돈나(prima donna, 제1의 여성, 즉 오페라의 주역 여가수)로서의 연주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특히 제1막에 나오는 ‘이상하다, 이상해’(E strano! e strano!), ‘아, 그이였던가’(Ah, fors’e lui), ‘언제나 자유롭게’(Sempre libera)로 이어지는 잇단 아리아가 그랬고, 하이 C, D♭, E♭음과 같은 고음과 최고음, 기교적인 멜리스마(melisma)의 자유자재한 구사는 대단히 극적인 것이었다.

 

연기력 또한 빛났다. 1막의 화려하고 뜨거운 비올레타, 2막의 외롭고 슬픈 비올레타, 3막의 창백하고 초췌한 비올레타와 같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제스처가 그렇게 보이게 했다. 다만 1막에서 비올레타의 정열, 혹은 열정을 상징하는 붉은색 의상을 입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또한 알프레도 장지현은 부드럽고 서정적인 미성(美聲)을 자랑했고, 제르몽 유용준은 중후하면서도 투명한 음색이 돋보였다. 또한 플로라 정수정은 훤칠한 키에 선이 굵은 목소리가 두드러졌고, 안니나 도현미의 음성은 오히려 하녀(下女) 답지 않을 만큼 해맑았다.

 

여기에 섬세하고 엄밀한 경상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이칠성)의 음향효과, 대구오페라콰이어와 센텀합창단의 합창, 파트별 음향의 조화와 균형 등이 더해졌다.

 

「라 트라비아타」는 볼거리도 적지 않았다. 단순하되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무대장치, 즉 공중에서 내려오는 와인 잔(盞)들, 무대에 배치된 샹들리에, 정지된 동백꽃과 산화(散花) 장면 등이 그러했다. 여기에 ADD컴퍼니의 발레 장면도 볼거리를 한층 더했다. 그러나 때때로 노래와 일치하지 않는 자막, 자막에 나타난 오기(誤記) 등은 자못 아쉬운 것이었다.

 

한편, 부산오페라하우스 건립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현재 공정률 40%에 이르는 공사는 총 건립비 3,050억 원을 투입, 오는 2024년 10월에 개관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페라하우스의 운영주체 문제는 물론, 공법 변경 및 설계 부실문제, 공기 지연에 따른 추가 예산문제 등이 잇따라 불거졌다. 이에, 준공 및 개관 시점 또한 불투명해졌다.

 

게다가 지역 오페라의 인력풀에 대한 문제도 노출된 바 있다. 올해 부산오페라 시즌에 참여할 단원 공개모집에서 지원자가 미달되어 추가 모집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원 각 30명 씩을 뽑을 계획이었으나, 지원자가 24명(오케스트라 8명, 합창단 16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습횟수만 해도 10회에 이르는데, 이에 대한 보수는 기껏 30~40만 원에 불과해 마침내 ‘열정 페이’ 논란마저 불러 일으켰다.

 

부산의 랜드마크, 부산의 문화관광 거점시설…. 다 좋은 말이고, 훌륭한 수사(修辭)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부산오페라하우스가 부산의 오페라와 오페라 문화를 창출하는 사람에 있다는 점이다. 달은 보지 않고, 언제까지 손가락 끝만 바라 볼 것인가!

 

글_ 김창욱 음악학박사(Ph. D), 음악풍경 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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