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는 마산이 고향인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 1903-1982)의 시조다. 여기에 향그러운 선율을 얹은 이는 평안도 안주출신의 작곡가 김동진(金東振 1913-2009). 1933년, 그러니까 작곡자가 21살 때인 숭실전문학교 2학년 재학시절에 만든 것. 국문학자 양주동(梁柱東)으로부터 배운 노산의 「가고파」 10수(首)에 감명을 받은 터였다.
김동진(金東振 1913-2009)
오늘날 널리 알려진 「가고파」는 그 가운데 4수(首)로 만들어졌고, 나머지 6수(首)는 이후 꼭 40년 만인 1973년, 작곡자가 61살 때 마침내 갈무리되었다. 앞의 것은 '전편'(前篇), 뒤의 것은 '후편'(後篇)으로 각각 구분되는데, 후편은 1973년 12월 10일 숙명여대 대강당에서 테너 김화용의 독창과 숭의여고 합창단의 합창에 의해 초연되었다. 너무나도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작곡자의 자전 에세이집 『가고파』(성광사, 1982)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가고파」는 매우 특징적인 노래다. 광복 이전, 요컨대 한국 서양음악 1세대 음악가들이 썼던 노래는 장절형식(章節形式, 똑같은 선율에 각 절의 가사만 다른 형태)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일관작곡형식(一貫作曲形式)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가사에 선율을 반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선율을 붙여 노래를 만들어가는 형식이다. 채동선의 「고향」도 그러한데, 그런 점에서 이들은 한국가곡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젖힌 노래라 할 만하다.
「가고파」는 오는 1월 15(목) 저녁 7시 음악풍경 연주홀에서 열리는 토크콘서트 '나노래'(소설가 강동수 편)에서 실제 연주된다. 테너 김화정 님의 탄력적인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피아노 이소영 님). 박수를 많이 치면, 후편도 들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음악이 있는 저녁, 목요일에 만나요~! 2015. 1. 10 들풀처럼.
테너 박인수 님이 노래하는 「가고파」(전편)
[전편]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지금은 다 무얼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후편]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 보고 저기 가 알아보나
내 몫 옛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처녀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 아까와라 아까와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안겨
처녀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 아까와라 아까와
일하여 시름 없고 단잠 들어 죄 없은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 젓는 배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 바다 물을 따라 나명 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또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나 살꺼나
돌아가 알몸으로 깨끗이도 깨끗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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