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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불경

난생처음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한때 시의회에서 한 방을 썼던 노총각 김정인 씨가 늦깍이 장가를 들었다. 지난 토요일 해운대 어느 호텔 웨딩홀에서였다. 축의금을 건넸더니, 내가 내민 봉투보다 더 큰 봉투를 전해 주었다. 겉봉에는 "베풀어 주신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써 있었고, 열어 보니 고급용지에 다시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하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구구절절하게 씌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또 다른 종이가 접혀 있었다. 펼쳐 보니, 한지에 '무불경(無不敬)', 즉 '세상에 공경하지 않을 것은 없다'는 아포리즘이 친필로 씌어져 있었고, 낙관도 세 군데나 찍혀 있었다. 물론 글씨 쓴 이의 함자도 또렷하다(金應律). 신랑의 부친이자, 현재 부산독립운동기념사업..

아름다운 날들 2023.12.04

맨발 걷기

바야흐로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맨발로 걸으면 우리 인체에 많은 긍정적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면역체계 강화, 근육사용 증가, 발바닥 감각 증가, 혈액순환 촉진, 자연스러운 걸음걸이, 불면증 개선, 스트레스 감소와 두뇌 발달, 균형감각 제고 등이 그것이다. 눕지 않고 걸어야 한다. 쥐스킨트(P. Süskind 1949~ )의 ‘좀머 씨 이야기’에 나오는 좀머 씨처럼 걸어야 한다. 그는 끊임없이 걷는다. 한시라도 그는 자신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고 걸음을 재촉한다. 멈출 줄을 모른다. 나도 걷고, 너도 걸어야 한다. 우리 모두 어깨 겯고 걸어야 한다.

힐링의 시대 2023.12.03

쇼펜하우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타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게 대하지 마라, 타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친절하게 대해봤자 상대방은 선을 넘게 된다. 주변 사람한테 잘해 주기만 하면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원래 친절한 사람이니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계속 호의를 요구한다. 호의가 권리가 된다. 타인을 도와주고 싶다면 도와줬을 때 고마워하는 사람만 도와줘라, 안 좋았던 관계를 회복하려고 굳이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래봤자 좋을 것도 없다. 배신은 누가 하는가? 대부분은 친하지 않은 사람이 배신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가까운 사람이 배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이 사람은 배신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배신이란 건 빨리 배신할 사람과 천천히 배신할 사람만 있을 뿐..

아름다운 날들 2023.11.14

겨레하나 걷기대회

지난 11월 5일(일) 오후 2시부터 열린 사하겨레하나의 제2회 걷기대회에 참여했다. 다대포 통일아시아드공원에서 두송반도 전망대를 거쳐 돌아오는 길이었다.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는 "반전평화 통일좋아!". 각지에서 300여 명이 참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날 나는 난생처음으로 경품 하나를 탔다. 프라이팬, 고기 구워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삶과 문화 2023.11.08

내 생일

어제는 오십여 년 전, 내가 맨 처음 세상의 빛을 본 날이다. 시쳇말로 '귀 빠진 날'이다. 일본에서는 탄생일(誕生日, たんじょうび)이라 하고, 성인(聖人)들께는 탄강일(誕降日)이라 이른다. 또 어른들께는 생신(生辰)이라 말하고, 나 같은 범인(凡人)에게는 그냥 생일이라 칭한다. 하여튼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날이요, 하릴없이 한 살을 더 먹을 수밖에 없는 날이다. 아무도 모르게 지났으면 하는 마음이었건만, 처(妻)와 셋이나 되는 여식(女息)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갓 나온 영화 '소년들'을 보고, 술과 고기로 배를 불리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값비싼 지갑에 현금까지 선물로 받고 보니, 나름의 살맛도 없지 않았다.

아름다운 날들 2023.11.08

모발 기부

우리집 막내 여식 탱자*가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하고, ‘모발 기부증서’를 발급 받았다. 세상에 머리카락도 다 기부하다니! 알고 보니, 뜻 깊은 일이다. 여기에 울 탱자가 기꺼이 동참한 것은 실로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으니, 可謂 오랑우탄보다 낫다고 내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 탱자 : 하는 짓거리마다 탱자탱자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 본명은 다여름. 이 일을 맡아 하는 곳은 ‘어머나운동본부’. 여기서 ‘어머나’는 ‘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의 줄임말이다. 일반인들로부터 25cm 이상의 머리카락 30가닥 이상을 기부 받아 하루 4명, 매년 1천 5백여 명씩 발생하고 있는 20세 미만의 어린 암환자들에게 맞춤형 가발을 무상으로 제공한단다. 그들의 심리적 치유를 돕기 위해서다. 누구나 쉽게..

아름다운 날들 2023.11.07

무대와 디자인

무대를 빛나게 보이게 하려면 무엇보다 빔과 스크린, 조명 디자인 등의 장치 마련이 필수적이다. 콘서트에서 음향이 가장 중요하다면, 그 다음 중요한 것이 이게 아닐까? 서울의 어느 무대를 촬영한 아래 화보를 참고하면 좋겠다. 다만 MR을 사용했는지 무대에는 세트드럼, 혹은 피아노만 덩그러니 연주된다. 물론 시각적 효과가 좋아야겠으나, 최소한의 기악편성에 노래가 나와야 실연(實演)의 충만한 음향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