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600

무불경

난생처음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한때 시의회에서 한 방을 썼던 노총각 김정인 씨가 늦깍이 장가를 들었다. 지난 토요일 해운대 어느 호텔 웨딩홀에서였다. 축의금을 건넸더니, 내가 내민 봉투보다 더 큰 봉투를 전해 주었다. 겉봉에는 "베풀어 주신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써 있었고, 열어 보니 고급용지에 다시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하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구구절절하게 씌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는 또 다른 종이가 접혀 있었다. 펼쳐 보니, 한지에 '무불경(無不敬)', 즉 '세상에 공경하지 않을 것은 없다'는 아포리즘이 친필로 씌어져 있었고, 낙관도 세 군데나 찍혀 있었다. 물론 글씨 쓴 이의 함자도 또렷하다(金應律). 신랑의 부친이자, 현재 부산독립운동기념사업..

아름다운 날들 2023.12.04

쇼펜하우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타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게 대하지 마라, 타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친절하게 대해봤자 상대방은 선을 넘게 된다. 주변 사람한테 잘해 주기만 하면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원래 친절한 사람이니 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계속 호의를 요구한다. 호의가 권리가 된다. 타인을 도와주고 싶다면 도와줬을 때 고마워하는 사람만 도와줘라, 안 좋았던 관계를 회복하려고 굳이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래봤자 좋을 것도 없다. 배신은 누가 하는가? 대부분은 친하지 않은 사람이 배신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가까운 사람이 배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친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이 사람은 배신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배신이란 건 빨리 배신할 사람과 천천히 배신할 사람만 있을 뿐..

아름다운 날들 2023.11.14

내 생일

어제는 오십여 년 전, 내가 맨 처음 세상의 빛을 본 날이다. 시쳇말로 '귀 빠진 날'이다. 일본에서는 탄생일(誕生日, たんじょうび)이라 하고, 성인(聖人)들께는 탄강일(誕降日)이라 이른다. 또 어른들께는 생신(生辰)이라 말하고, 나 같은 범인(凡人)에게는 그냥 생일이라 칭한다. 하여튼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날이요, 하릴없이 한 살을 더 먹을 수밖에 없는 날이다. 아무도 모르게 지났으면 하는 마음이었건만, 처(妻)와 셋이나 되는 여식(女息)들의 성화에 못 이겨 갓 나온 영화 '소년들'을 보고, 술과 고기로 배를 불리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값비싼 지갑에 현금까지 선물로 받고 보니, 나름의 살맛도 없지 않았다.

아름다운 날들 2023.11.08

모발 기부

우리집 막내 여식 탱자*가 머리카락을 잘라 기부하고, ‘모발 기부증서’를 발급 받았다. 세상에 머리카락도 다 기부하다니! 알고 보니, 뜻 깊은 일이다. 여기에 울 탱자가 기꺼이 동참한 것은 실로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으니, 可謂 오랑우탄보다 낫다고 내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으랴. ※ 탱자 : 하는 짓거리마다 탱자탱자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 본명은 다여름. 이 일을 맡아 하는 곳은 ‘어머나운동본부’. 여기서 ‘어머나’는 ‘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의 줄임말이다. 일반인들로부터 25cm 이상의 머리카락 30가닥 이상을 기부 받아 하루 4명, 매년 1천 5백여 명씩 발생하고 있는 20세 미만의 어린 암환자들에게 맞춤형 가발을 무상으로 제공한단다. 그들의 심리적 치유를 돕기 위해서다. 누구나 쉽게..

아름다운 날들 2023.11.07

야외 도서전

해피북미디어가 어느 야외 도서전에 참여했다. 센터에는 나의 저작이 오롯이 전시되어 있다. 초판 '잃어버린 콩나물을 찾아서'(2023)와 재판 '청중의 발견'(2023)이 그것이다. 널리 알려져, 부디 많이 팔렸으면 싶다. 그래야 출판사가 살고, 내게도 인세가 들어올 테니까. 기왕이면 금은보화가 우르르 우르르 쏟아져 쌓인다면, 어찌 즐겁다 말하지 않을 수 있으리.

아름다운 날들 2023.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