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적시고 간 노래들 345

아들과 딸

울 아부지와 엄마는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3남이나 낳은 엄마는, 그 이유만으로 당당했다. 후대에 이르러 나와 이뿐이는 3녀를 낳았다. 3녀나 낳은 이뿐이는 한동안 눈물을 찍어내야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세상이 바뀌었다. "딸 둘이면 금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은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메달"이라는 우스갯 소리가 생길 정도였으니! 실로 산전벽해에 천지개벽이 아닐 수 없다. 남아선호 관념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했다.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그러한 풍경을 담은 드라마가 MBC의 '아들과 딸'이다. 토·일요일 저녁 8시에 방송된 그것은 총 64부작(1992. 10. 03-1993. 5. 9)으로 구성되었다. 쌍둥이 남매인 귀남이(최수종 분)와 후남이(김희애 분)가..

연안송

'중국의 아리랑'으로 불리는 「연안송」(延安頌). 광주출신의 항일음악가 정율성(鄭律成 1918-1976)이 작곡한 노래. 가사는 여류시인 모예(莫耶)가 썼다. 1938년 봄 옌안 대강당에서 소프라노 탕룽메이(唐榮枚)에 의해 처음 불렸는데, 그 반향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의 이름은 아직 한국에서 낯설다. 그러나 그는 「연안송」을 비롯해서 「중국인민해방군가」, 「팔로군 행진곡」 등으로 13억 중국인의 가슴 속에 아로새겨진 예술가다. 독창은 물론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총동원되는 「연안송」. 장엄하고 웅대하다. 2014. 3. 14 들풀처럼 '연안송'을 연주하는 중국 북경교향악단과 중앙가극원합창단 석양의 빛은 산봉우리 탑을 비추고 달빛은 강가의 반딧불을 비춰주네 봄바람은 평탄한 벌판에 불어가고 많은 산들은 견고..

새야 새야

올해는 동학 120주년이 되는 해. 민요 [새야 새야]는 갑오년 동학운동 때 즐겨 불렸다. 이 노래를 채보·편작한 채동선(蔡東鮮 1910-1953)은 근대시기 한국의 대표적인 엘리트 예술가이자, 일제에 저항한 거의 유일한 음악가였다. 그러나 한국전쟁기 때 피난지 부산에서 삶을 마감했다. 굶주림 때문이었다. "한때 부두에서 그의 체력에 과중하게 육체노동을 했"고 "그의 가족이 부두에서 담배행상을 했"으며, "못먹어서 괴로왓고 괴로워서 병낫고 병으로 쇠진해가는 육신을 지탱할 영양을 주급치 못"했다. 윤이상, [빈사(瀕死)한 예술가-채동선씨의 작고에], 『부산일보』 1953년 2월 11일자. 노래는 소프라노 남덕우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창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