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우리말사전 평소 존경해 마지 않는 최상윤 회장님께서 오랜만에 책을 내셨다. 『순우리말사전』(동아대출판부, 2018)이다. 사전을 읽는다는 것은 차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사전을 만드는데는 실로 오랜 시간과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 또한 그런 작업에 잠시 매달린 적이 있었기에 어렴풋이나.. 아름다운 날들 2018.02.14
김다봄 졸업식 오늘 아침, 둘째 여식 따봉이*의 졸업식이 열렸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애비의 자격으로 친히 졸업식장을 찾았다. 학교는 고지대에 위치했고, 능히 108개를 넘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서야 비로소 1층 교무실이 보인다. 거기서 다시 엘리베이트 없이 5층이나 더 올라야 겨우 졸업.. 아름다운 날들 2018.02.12
다시 읽기: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 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아름다운 날들 2018.02.11
다시 읽기: 저녁눈 박용래(朴龍來 1925-1980)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 『싸락눈』(삼애사, 1969) 아름다운 날들 2018.02.10
오늘이 달린다 김성배 시인이 시집을 냈다. 시인께서 초야에 묻혀 있는 내게 친히 우편으로 보내셨다. 실로 감읍한 일이다. 제목은 『오늘이 달린다』(모악: 2017). 여기에는 모두 50여 시편이 실려 있다. 시집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미시적(微視的)으로 성찰하고 있다. 가령.. 아름다운 날들 2018.02.02
다시 읽기: 굴삭기의 힘 김광규(金光圭 1941- ) 하수관 교체 공사로 온 동네가 시끄럽다 공사 주역은 대형 포클레인 브레이커로 아스팔트 길바닥에 구멍을 뚫고 삭은 하수관을 쇠바가지로 걷어내어 덤프트럭에 옮겨 싣는다 새 하수관을 그 자리에 배열하고 수평을 맞춘 다음 그 위에 흙을 덮고 쇠바가지로 쿵쿵 눌.. 아름다운 날들 2018.01.21
다시 읽기: 내가 재벌이라면 김종삼(金宗三 1921-1984) 내가 재벌이라면 메마른 양로원 뜰마다 고아원 뜰마다 푸르게 하리니 참담한 나날을 사는 그 사람들을 눈물 지우는 어린 것들을 이끌어 주리니 슬기로움을 안겨 주리니 기쁨 주리니. - 權命玉 엮음, 『金宗三 全集』(나남출판, 2005), 228쪽. 【解說】김종삼은 시인일.. 아름다운 날들 2018.01.20
다시 읽기: 자유지역 쟈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 1900-1977) 군모를 새장에 벗어 담고 새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외출했더니 그래 이젠 경례도 안 하긴가? 하고 지휘관이 물었다. 예 경례는 이제 안 합니다, 하고 새가 대답했다. 아 그래요? 미안합니다. 경례를 하는 건 줄 았았는데 하고 지휘관이 말했다. 괜찮습니.. 아름다운 날들 2018.01.18
다시 읽기: 採鑛記 오정환(1947-2018) 우리가 닿아야만 할 확신의 나라 가장 빛나는 마을어귀까지 나의 貨車는 달리고 있다. 아직도 분별되지 않는 형상들의 정수 떨어져 쌓이는 좌절을 실어나르며 혼미의 동굴, 숨죽여 누운 어둠의 깊은 강을 건너 나의 불면의 貨車는 달리고 있다. 잠들어버린 세상의 곤혹도 .. 아름다운 날들 2018.01.16
다시 읽기: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姜恩喬 1945- )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 아름다운 날들 2018.01.11